부르사(Bursa)는 우리나라로 치면 수원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차로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며 인구수도 204만 명으로 터키 인구(8,434만 명, 2020년 World bank 기준)의 약 12%를 차지하여 수원(인구 120만 명으로 한국 전체 인구 5178만 명의 12%를 차지함)과 비슷한 수준이다. 산업군으로 보면 터키에서 가장 큰 textile 시장이 위치하고 있어서 경상북도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공원과 녹지가 많아서 녹색 부르사(Yesil Bursa)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관광지로 유명하기보다는 살기 좋은 도시에 가깝다.
여행객이 드문 이 도시에서 종종 아랍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오스만 제국이다.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의 초기 수도로, 오스만 제국이 시작된 지역이다. 학창 시절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배우지만 지리적으로는 유럽 중심의,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중심의 역사를 배웠다. 서양 중심의 역사 수업에서 배우는 몇 안 되는 비유럽, 비기독교 관련 내용이 바로 오스만 제국이다. 로마 제국에 이은 또 하나의 제국을 건설하여 오랜 역사를 만들어온 오스만 제국은 여전히 많은 중동 국가들의 선망이다. 그래서 많은 아랍 여행객들이 오스만 제국이 시작된 곳, 부르사에 와서 유구했던 역사를 되짚어보고 이제 사라진 흔적에 대한 쓸쓸함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지곤 한다.
이미 도시의 대부분이 현대화가 되어 오스만 제국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드물지만 서울의 서촌, 북촌 한옥 마을처럼 부르사에도 오스만 빌리지라는 곳이 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오스만 제국 시절의 건물들이 그대로 있다. 그 시절 유행했던 오색빛깔 설탕물로 만든 찐득찐득한 사탕도 팔고, 옛 느낌 물씬 나는 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오는 관광객과 현지 사람들로 인해 늘 북적거린다.
오스만 제국에 대한 이렇다 할 로망이 없어도 부르사에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있으니, 그 이유는 이스켄데르 케밥이다.
백종원 요리연구가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도 등장한 이스켄데르 케밥은 부르사가 그 원조다. 다른 도시에 사는 터키 사람들도 오직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기 위해 부르사에 오기도 할 정도이니 그 명성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이스켄데르 케밥 집에 가면 토마토소스를 뿌린 빵 위에 얇게 썬 부드러운 양고기를 올린 접시를 내어온다. 제대로 된 곳이라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철판에서 뜨겁게 끓고 있는 버터를 가져와서 음식 위에 끼얹어 준다. 지글지글 끓는 버터가 고기를 살짝 코팅해주면 먹는 내내 육즙이 살아 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고기가 주체하지 못하고 흘러내린 버터와 육즙은 그대로 밑에 깔린 빵에 스며들어 촉촉하고 풍미 있는 빵을 함께 곁들일 수 있다.
이스켄데르 케밥을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남자친구의 말을 듣고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으러 갔다. 그의 말이 맞았다. 단언컨대 그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맛이었다. 채식을 2년가량 하다가 잠시 중단한 상태인데, 그동안 고기를 꼭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스켄데르 케밥을 먹고 그 마음, 그 생각을 잠시 취소했다. 스테이크도 필요 없다. 세상의 고기는 다 이렇게 부드럽고 고소해야 한다. 고기에 심지어 버터까지 들이붓다니 칼로리가 얼마일까 걱정되는 마음만 잠시 접어 둔다면 천상의 케밥을 만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이스켄데르 케밥 하나 먹자고 부르사까지 방문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물을 수 있다. 따지자면 서울에 닭갈비가 없어서 춘천에서 닭갈비를 먹는 게 아니고, 충무 김밥이 통영에만 있어서 통영에서 먹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원조는 원조다. 이스켄데르 케밥 하나로 부르사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