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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Feb 08. 2022

터키에서 만난 염소 할머니

남자친구네 집에서는 마트에서 우유, 버터 등 유제품을 사 먹지 않고 작은 목장에서 직접 염소 우유, 물소 우유를 사 먹는다. 공장형 축산을 통해 만들어진 우유보다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낙농가를 돕는 의미에서 몇십 년째 직접 방문하여 우유를 사 왔다고 한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염소 우유를 사 오라는 심부름을 받고 목장으로 향했다. 터키의 시골은 어떤 곳일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도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차가 멈췄다. 


부르사라는 도시의 매력은 도심과 시골, 부촌과 슬럼가가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고 섞여있다는 점이다. 어떤 지역에 가면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왼편은 현대식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 맞은편에는 공사장과 뒤죽박죽 낡은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차로 10분밖에 오지 않았는데 머물던 곳과 전혀 다른 시골 풍경이 펼쳐진 것이 신기했다. 빛바랜 풀들이 누워있는 빈 공터에 차를 세우니 옆에 있는 집에서 할머니가 나오셨다. 



오랜 세월 햇빛에 탄 피부는 거무스름하면서도 표면이 단단하고 매끈매끈하다. 가로등 불빛에도 반짝이는 피부와 작은 체구, 살짝 굽은 등에 현란한 꽃무늬 바지. 78세의 할머니는 오랜만에 보는 남자친구와 남자친구가 데려온 한국인 여자친구를 반갑게 맞이 해주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살랑살랑 불어오는 소똥 냄새는 옛날 할머니 댁으로 나를 돌아가게 했다. 터키어라서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남자친구에게 근황과 내 이야기를 물으며 반가워하시는 것이 분명했다. 


염소를 직접 보고 싶다고, 나중에 와서 일손을 돕겠다고 하자, 나중일 필요가 있냐며 우리를 농장으로 이끌었다. 감기에 걸려서 몸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괜찮다고 하는 우리에게 계속 손짓을 하시며 앞장서 걸어가셨다. 


염소 목장은 집 바로 옆에 있었다. 목장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작은 축사에 염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염소들은 저녁이면 이곳 축사에 들어와서 자고, 낮에는 윗산으로 올라가서 풀을 뜯는다고 했다. 새끼 염소 형제까지 번쩍 들어 올려서 만져보라고 하셨고, 살짝 어루만진 염소의 이마에는 보드라운 털이 곱슬거리고 있었다. 


평생 농사를 지으셨던 우리 할머니도 비슷한 모습,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계셨다. 사는 집이나 행색은 조금 더 나았지만 햇볕 아래에서 오래 일한 탓에 그을린 피부, 작은 체구, 초롱초롱한 눈, 그리고 사람을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랑스러움도 할머니와 많이 닮아 있었다. 만약 우리가 결혼식을 하게 되면 꼭 참석하겠다는 귀여운 다짐을 말씀하시며, “우리 딸 이리 와봐.” 하며 염소를 보여주시는 경계 없는 다정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경계가 없음이 가끔은 불쾌함을 주기도 한다지만 아낌없는 애정으로 울타리를 넘어오는 할머니를 누가 싫어할 수 있을까? 



매번 명절마다 우리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손을 흔들어 주시던 할머니처럼, 염소농장 할머니들은 커브길을 지날 때까지 가는 길을 바라보고 계셨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10시간 넘게 걸리는 터키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더듬더듬 수줍은 터키어로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더 편하게 생활하고 싶어서 터키어를 배우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마음의 빗장을 열고 사랑과 반가움으로 다가와주는 사람들에게 나 역시 충분히 응대할 수 있도록 터키어를 더 배우고 싶어졌다. 때때로 그리웠던, 떠올리면 마음속에 눈물이 핑 돌게 하는 할머니를 여기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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