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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Mar 09. 2022

한국 말고 여기서 봄의 조각을 찾을 시간

어느 계절을 제일 좋아하냐는 질문에는 사계절 골고루 답하지만 가장 기다리는 계절이 언제냐는 질문에는 아마 봄을 가장 많이 떠올릴 것이다. 겨울에도 주말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기어코 밖으로 나가지만 코 하나 떨어져 나가도 모를 만큼 추운 날씨에 모두들 입을 모아 외친다. 도대체 봄은 언제 오느냐고, 이번 겨울 너무 독하다고.


입춘이 지나도 언제 올지 모르는 봄에는 세상 가득 흩뿌려진 봄의 조각들을 찾아서 하나씩 맛보고 즐기는 재미가 그 어떤 계절보다 쏠쏠하다. 먼저 눈이 바빠진다. 더 이상 숨 쉬지 않는 것만 같던 나무들이 연두색 방울을 머금다가 꽃을 터트릴 때면 “진짜 봄이구나!”하는 감탄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진달래, 개나리부터 시작해서 4월의 벚꽃까지 알록달록한 봄의 조각들이 여름까지 쭉 펼쳐진다.


코와 입으로 만나는 봄도 있다. 봄동으로 만든 겉절이,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쑥으로 끊인 쑥국, 봄 향기 잔뜩 머금은 미나리까지 향 좋고 부드러운 채소들이 넘쳐난다. 겨우 내내 바닥에 배 깔고 누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귤 까먹고, 달달하고 포근한 고구마와 군밤도 야무지게 챙겨 먹었다. 봄이 오자마자 그 기억은 사라진다. 제철 나물을 새콤하게 무쳐 먹어야 집 나간 입맛이 되돌아온다며, 잃어본 적 없는 입맛을 괜히 한번 불러본다.


회사를 다니면서 봄이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곤 했다.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기뻐야 하는데 “캠퍼스병”을 독하게 앓았다. 봄만 되면 그리운 지난날이 떠오르며 학교로 돌아가고 싶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는 말에 맞게 제대로 벚꽃 놀이를 간 적도 없었건만, 그 시절에는 캠퍼스 안 벚꽃 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봄을 들이쉴 수 있는 젊음과 여유가 있었던 것만 같았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알면서도 3월이면 많은 직장인들이 귀교 본능에 시달린다. 이제라도 소중함을 깨달았으니 학교로 돌아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대학원 사이트를 뒤적거리고 교수님께 괜히 안부 인사 한번 드리기도 한다. 직접 공부를 하러 떠나고 보니 알았다. 학교가 그리웠던 마음은 봄이 준 굳건한 결심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그저 봄의 환각일 뿐이었다.


한국에 봄이 만연한 작년 3월, 나는 영국에서 봄을 보냈다. 비행기 타고 조금만 이동해도 날씨와 풍경이 싹 바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봄의 모습도 지역마다 다르다는 것을 미처 가늠하지 못했다.

뉴스를 보면 이제 봄이라고 하고 수업에서는 다들 봄이라 마음이 설렌다고들 하는데, 봄이 내 주변만 건너뛴 것 같았다. 봄의 기본이라 여겼던 날씨부터 배신했다. 북부 잉글랜드에 위치한 뉴캐슬 어폰타인은 9월부터 밤이 짧아지고 날씨가 쌀쌀한 겨울이 시작되고, 봄에도 춥기만 하다가 금세 더운 여름이 찾아오는 곳이었던 것이다. 예상보다 많이 춥지만 그래도 봄은 봄이라고 생각해보려 했다. 이맘때면 눈에 들어와야 할 연두색과 꽃분홍색은 어디에 있으며, 향긋한 봄나물은 어디 가야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겨울과 비슷한 회색 빛 봄의 거리, 찾아보기 힘든 봄의 식탁, 올라가 주지 않는 봄의 온도. 모두가 봄이라고 하는 3월부터 5월까지 나 홀로 “진짜 봄은 언제 오지?” 하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봄을 불러댔다.  


영국에서 구전 설화처럼 봄을 전해만 듣다가 올해는 터키로 넘어와서 첫 봄을 기다린다. 개나리, 진달래와 벚꽃이 흐드러진 풍경, 인공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적절한 봄나물들의 향기와 맛에 숨겨진 봄의 조각들이 여전히 소중하지만 이곳에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봄이 아니라고 해서, 진짜 봄이 아닌 것은 아니다. 진짜 봄을 찾아 어영부영 보내버린 영국의 봄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 나고 자란 지역에서 훌쩍 떨어진 이곳 터키에서 새로운 봄의 조각을 찾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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