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여행 많이 했어?”이다. 몇십 년 동안 지겹도록 눈에 치이던 한국식 건물들과 거리를 떠나 외국에 갔으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도장 깨기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마음먹지 않으면 국내 여행할 일이 잘 없듯이 외국에서도 애써 여유를 내지 않으면 여행을 다닐 일이 없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내려 바로 부르사로 왔더니 터키에 살면서 이스탄불도 안 가본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서울에 살 때에는 근교에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주말에 거기서 할 게 있나? 싶었는데, 그야말로 서울 촌사람의 아둔한 생각이었다. 이스탄불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 그거 하나 빼면 부르사도 제법 살만한 곳이었다. 교통 체증도 덜하고 사람도 적어서 훨씬 쾌적하기까지 하니, 살기 더 편하기까지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이스탄불인데도 딱히 갈 일이 없었다.
그래도 이스탄불은 이스탄불이었다. 막상 이스탄불에 갈 일이 생기니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가 아쉬워서 이왕 온 김에 하루 정도 묵으며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터키의 수도는 아니지만 터키에서 가장 유명하고 크고 번화한 도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서양 문화가 만나는 집결지인 이스탄불에 드디어 갔다.
바다, 그리고 이스탄불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기준으로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왼쪽을 유럽 지구, 오른쪽을 아시아 지구라고 부른다. 두 지역에 각각 이스탄불 사람들이 만나서 먹고 마시는 대표적인 거리가 있는데, 유럽 지역에는 탁심이, 아시아 지구에는 카디쿄이가 있다. 주요 관광지가 올드 타운인 유럽 지구에 있어서 여행객들에게는 탁심이 더 유명한 듯하다. 소피아, 블루 모스크 등의 유명 관광지까지 둘러볼 시간은 부족해서 이스탄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탁심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탁심의 메인 거리, 명동 생각 물씬...
탁심은 오래전 이스탄불루(Istanbullu, 이스탄불 출신 사람들)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던 곳이었다. 이스탄불루란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단순히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사람을 지칭한다기보다는 이스탄불의 정서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탁심은 더 이상 이스탄불루들만의 거리가 아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동 거리에 가까운 곳이 되었다. 놀러 나온 터키 사람들도 많지만 그보다는 여행객이 주를 이루는 거리가 되어 버린 듯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여행객이 급감하여 탁심 거리에 있는 동아시아 사람은 오직 나뿐인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느꼈던 명동을 이곳 탁심에서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어딜 가나 인스타 감성의 예쁜 카페들이 많지만, 중학생 때 명동은 파르페와 케이크를 즐길 수 있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의 카페들이 건물 2층에 줄지어 있는 거리였다. 파스타나 즉석 떡볶이를 먹고 나서 후식으로 카페에서 파르페를 먹는 귀여운 코스를 즐겼다. 다양한 종류의 옷과 액세서리 등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쇼핑 거리도 우리에겐 덤이었다.
다락방 같은 2층에서 달달한 울랄라 베아트리체 한입:)
이곳에서도 귀여운 코스를 즐길 수 있다고 해서 좁은 골목 맨 끝자락에 위치한 Jadore라는 초콜릿 카페에 들어갔다. 사장님께서 젊은 시절, 이스탄불에 제대로 된 초콜릿이 없음을 한탄스럽게 생각하셔서 프랑스에서 직접 배워 오셨다고 했다. 다락방처럼 천장이 낮은 2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은 밟을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가게가 보낸 세월을 알려주었다. 카카오를 듬뿍 넣어 만든 핫초코와 울랄라 베아트리체라는 초코 디저트를 주문하고 나무 창문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어 좁은 골목, 차를 마시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고앵님이 떨어질까봐 걱정했지만 역시나 기우였다. 아주 잘 돌아다니심
좁은 울타리를 힘겹게 넘어 다니는 고양이를 응원하며 나의 학창 시절 명동처럼, 남자친구의 이십대로 돌아가 보았다. 프랜차이즈와 대형 옷가게, 화장품 가게들이 명동 골목을 차지한 것처럼 이곳 탁심도 골목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느낌으로 변한 것 같았다. 우리가 20대에서 30대가 되었듯 이 거리도 다음 세대에 맞춰 흘러가는 것일 뿐인데, 변화가 당연하면서도 서글펐다. 그럼에도 뒷골목에 여전히 남아 있는 카페와 술집이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우리 아직 이곳을 즐겨도 된다고, 가끔 들러 달라고 묵묵히 우리를 반겨주는 듯했다.
골목길이 꿀잼인 이스탄불. 언젠가 이스탄불 골목길에서 술한잔 걸치고 싶다.
남자친구는 이스탄불에서 대학교를 나와 대학교에서 일을 했기에 이십 대 전부를 이스탄불에서 보냈다. 스무 살의 추억이 가득한 거리를 함께 돌아다니니 우리가 정말 다른 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이 맞다는 자각이 들었다. 함께 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조금은 아쉽고 질투 나면서도, 그렇기에 서로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소재들이 많은 것이 감사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