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지낼 집을 구하기 전까지 남자친구 부모님 집에서 묵기로 했다. 손님맞이 용도로 쓰이던 라운지가 잠시 우리 방으로 쓰임새를 바꿀 계획이었다. 영국 생활을 정리하기에 바빠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우리를 위한 침구들이 라운지에 차곡차곡 입주하고 있는 사진을 받으니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 예비 시댁에서 살기로 한 것이었다.
아직 시댁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외국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외국인이니 한국보다 나을 거라고 해도, 부담이 없을 순 없었다. 요즘은 “안 그런” 시댁도 많다고 하지만 "시"자 들어가는 건 그냥 다 싫어서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말이 여전히 농담처럼 인터넷에 떠도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말로만 듣던 시댁, 피하고 싶었던 시댁 이건만 예비 시부모님과 초면에 한 집에 살아야 한다니 동거 기간을 최소화하리라 결심했다.
세상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법이다. 1~2주 정도면 나가 살 집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마음에 드는 매물이 계획처럼 뚝딱 나와주지 않았다. 외국인, 특히 동아시아인이 드문 이곳에서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는 덜 보수적인 동네에 집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사 날짜가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결국 예비 시댁에서 3개월을 지내게 되었다.
라운지는 두 사람에게 너무 넓었다. 한쪽 벽 전체가 발코니와 이어진 유리 창문이라서 시야가 탁 트였다. 공용 공간이라는 원래의 용도에 걸맞게 발코니, 부엌, 복도 등 집의 모든 공간과 쉽게 닿는 곳이었다. 영국에서 지냈던 셰어 하우스에 비해 훨씬 쾌적하고 넓은 방에서 생활하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부모님 두 분 다 출근을 하셔서 집에 사람이 없는 시간이 더 많은데도 라운지라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과 부담스러움이 있었다.
예비 시댁과의 동거는 생각보다 편했다. 걱정했던 날들이 무색하게 그 누구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눈치 보며 따로 해야 할 일도 없었고 억지로 맞추라고 강요받지도 않았다. 필요한 것은 딱 하나. 그 집에 사는 식구가 된 만큼 동거인 간의 암묵적인 규칙만 따르면 되었다. 가장 중요시되는 규칙 중 하나는 모두 다 같이 식사를 준비해야 하며,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본인이 치우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고 가족 모두 일이 있기 때문에 다른 구성원이 자신으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하는 것은 크나큰 민폐라는 주의였다.
밥 먹고 과일을 예쁘게 깎으려고 손 떨 일도 없었고, 부뚜막에 앉은 송아지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릴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냄새난다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한국음식을 만들 때 눈치가 보였다. 일부러 아무도 집에 없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빠르게 요리를 해 먹곤 했다. 그러다가 누구라도 일찍 들어오면 식은땀을 흘리며 급하게 치우려 들었다. 한편으로는 음식을 하면서도 한국음식이, 나를 대표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주눅이 들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혹시 싫어하면 어떡하지 걱정을 사서 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보고 자란 것처럼 남편을 잘 돌봐주는 아내의 역할을 바라시지는 않을까 하는 부담도 가졌던 것 같다. 어느 오후 남자친구와 라운지 소파에 각자 누워서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었다. 절반은 수면 상태, 나머지 절반은 시청 모드로 있을 때 누군가 라운지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쏟아지는 졸음에 고개를 돌려 보지 못한 채 누워 있는데 누군가 남자친구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듯했다. 아마 엄마였던 것 같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으니, ‘혹시 아들은 안 챙기고 나 혼자 이불 덮고 있다고 서운해하셨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남자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그날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둘이 낮잠을 자고 있는 걸 보고 덮고 있던 담요가 부족해 보여서 이불을 덮어 주려다가 내가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을 보고, 혹시 방해가 될까 봐 그냥 가만 놔두셨다는 이야기였다.
나만 불편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족들도 나를 아들을 챙겨주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중에 있었던 것이다. 명절이면 고무장갑을 벗을 새 없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나 온갖 종류의 전을 만드느라 기름 범벅이 되었다는 회사 동료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가졌던 불편함,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솔직한 마음으로 다가갈 시간이었다. 시댁과의 관계라고 해서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이 더 편안한 사이가 되는 방법임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시댁은 마냥 편할 수 없다. 따로 살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편안함이 얼굴에 가득하다. 이제 와서 남자친구가 고백하기를, 그 당시 내 얼굴 장난 아니었다면서, 바람 쐬러 카페에 데려가면 내가 자주 울었다고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심했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침에 마음 편하게 된장국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옛 말이 맞았다. 살짝은 거리감이 있는 사이일 때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여기서의 거리감은 물리적 거리감만 의미하지 않는다. 심리적으로도 너무 기대하지 않는 거리감이 필요하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특별히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 없이 소탈하게 소통한다면 따뜻한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