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공항에 내리자마자 더위로 꽉꽉 채운 듯한 공기가 훅 하고 코 속으로 들어왔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여름을 관찰할 새도 없이 허겁지겁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도심에 가까운 공항으로 넘어갔다. 당시 남자친구의 동생이자 지금의 시동생이 우리를 최종 목적지인 부르사까지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스탄불에 처음 온 나를 배려해서 보스포루스 해협 대교 중 가장 유명한 다리를 건너 부르사로 가자고 제안해주었다. 이스탄불 유럽지구와 아시아지구를 잇는 다리를 지나며 관광객들이 사진이나 영상을 많이 찍는다고 했다. 아직 모든 게 낯설지만 앞으로 또 올 일이 많겠지 하는 거주자의 태도로 잔잔한 바다를 가만 바라보았다.
밤 아홉 시가 다 되어서야 남자친구의 집에 도착했고 발코니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8월이면 아직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릴 한국을 떠올렸다. 내가 살게 되리라 상상해보지 못한 나라, 이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도시에서 아주 살짝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벌써 또 여름이다.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똑같은 계절을 두 번째로 맞이하니 기분이 묘하다. 태어나서 가장 오래 살았던 세상과 맺어진 연결고리가 살짝 느슨해진 것 같다. 도망치고 싶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나는 한국에서, 지금 속해 있는 모든 공동체에 딱 붙어 살 운명이라고 치부했었다. 내 사주에는 역마살이 없다는 사주쟁이의 말을 철썩 같이 믿어보려 했고,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사람들의 빅데이터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진작 두 번째 계절을 보내고 두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니, 내가 이럴 사람인 줄 누군가는 알았을까?
분명 터키의 여름은 한국보다 덜 덥고 덜 습했다. 해가 지고 나면 조금 선선 해져서 잘 때만큼은 쾌적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럼에도 햇빛은 뜨거웠다. 모든 생명체를 태워버릴 만큼 기세가 좋고 힘이 세서 한국보다 더 햇볕이 뜨거운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가 보내는 여름을 지독하게 만드는 원인은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는 에어컨이 없는 아파트 꼭대기 복층 집에 살고 있다. 발코니로 나가는 문에 달린 방충창을 고양이가 다 찢어 놓고 자유롭게 넘나들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꿀떡이가 난간에 올라가곤 해서 제 아무리 몸을 납작하게 만들어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만 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가뜩이나 더운데 통풍도 안되니 하루 중 대부분을 땀 흘리는데 쓰고 있다. 인간이 하루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의 양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여름은 땀을 만들어내는데 내 모든 에너지를 사용할 것만 같다.
푹푹 찌는 한국의 여름을 생각하며, 여기는 그래도 저녁에 시원하다고 느꼈던 그날은 지워졌다. 어디나 여름은 뜨겁고, 조금도 저항할 의지 없이 매일 낮마다 더위에 무참히 패배했다. 대체 가을은 언제 오냐고, 다음 계절을 계속 불렀다. 추워지고 나면 한 없이 밝고 뜨거웠던 여름을 이야기할 게 분명하면서도 가을을 찾고 있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여름을 보내고 나니,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고양이 두 마리가 자유롭게 뛰어놀고 가구나 벽지를 망가트려도 상관없는 공간이 필요했다. 땀 뻘뻘 흘리며 매물을 보러 매일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슬리퍼 모양대로 타서 발등에 얼룩말 무늬가 생겼다.
살았던 곳을 떠나던 날도, 안락한 곳에 정착하려는 날도 모두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