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여행에서 알게 된 무계획의 즐거움
가장 가까이 위치한 나라. 갈 때마다 눈이 즐겁고 입이 행복해지는 나라. 유일하게 여러 번 다녀온 나라지만 계속 또 가고 싶은 나라.
첫사랑처럼 특별하고 소중한 첫 해외 여행지, 바로 일본이다.
미숙했던 첫 해외여행은 뜨거웠지만 서툴렀다.
여행에서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고,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알지 못했기에, 제대로 즐길 줄도 몰랐고 그저 경험해내기에 바빴던 기억이 난다. 첫 여행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다름 아닌 편의점 오니기리였다.
첫사랑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긴다고 했으니, 첫 여행 이후 일본에 갈 때마다 편의점에 꼭 들러 오니기리를 사먹는다.
지금은 엔화 가치가 한화와 비슷해서 일본 여행이 부담스럽지 않지만, 2010년까지만 해도 일본 여행은 경비를 잘 계산해야 하는 여행 중 하나였다. 과외로 돈을 벌긴 했지만 돈을 쓸 줄 몰랐던 대학생들이 처음으로 여행을 가보겠다고 정했던 곳은 일본이었다.
우리가 오사카를 여행지로 정한 이유는 오사카 여행 만화를 보고 나서였는데, 쿠로 타코야키, 달달한 디저트 등 맛있는게 풍부한 그곳을 보며 도쿄가 아닌 오사카를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일주일 여행을 가는건 무서워서, (왜 무서웠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왠지 일주일이나 여행을 가는게 어색하고 무서웠다.) 어설프게 5박 6일이라는 시간을 정해두고, 오사카 3일 나라, 고베 2일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구경하는 일본 편의점은 그야말로 신세계, 별천지였다.
우리는 식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침은 편의점에서 오니기리로 해결하고, 점심 저녁은 조금 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일본 문화를 좋아해서 일어에 다소 익숙했던 라냥과 달리, 일어를 한 글자도 못했던 나는 오니기리를 고르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러다 문득 소소한 도전을 해보고 싶었다.
“우리 오니기리 안에 뭐 들었는지 찾아보지 말고 그냥 랜덤으로 골라서 먹어볼까?”
고심해서 처음 고른 오니기리는 참치마요였다.
한국에서도 참치 마요는 전주비빔 삼각김밥과 함께 박빙을 겨루는 맛 보장 삼각김밥이다. 느낌대로 골랐을 뿐인데, 실패하지 않았다는 기쁨에 쾌재를 불렀다. 그때 당시에는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던 신문물, 오후의 홍차와 함께 오니기리를 먹으며 즐거운 식사를 마쳤다. 내일은 어떤 오니기리를 만나게 될까? 여행의 시작이 좋다.
다음날의 오니기리도 성공이었다.
배고파서 욕심을 부려서 2개를 샀는데, 명란젓이 들어있는 오니기리도 연어알이 들어 있는 오니기리도 맛있게 먹었다.
오사카에 가면 꼭 먹어야 한다는 오코노미야끼, 타코야끼만큼 훌륭한 맛은 아니었지만 여행책, 맛집 후기를 찾아보지 않고 오로지 내 감에 의존해서 여행의 일부를 선택한다는게 즐거웠다.
셋째 날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기 전, 우리는 숙소 근처 편의점에 들러 자연스럽게 오니기리를 고르기 시작했다. 곤부라는 한자가 적힌 오니기리를 발견했고, 도무지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어서 선택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줄 서서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오니기리를 깠고,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 미끄덩하면서 오독오독 씹히는 건 뭐지?'
입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어 입으로 자른 오니기리의 단면을 보는 순간 알았다. 이건 다시마다. 다시마를 오니기리에 넣어서 먹는데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쉽사리 이해가 되진 않았다.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급식 메뉴인 미역 줄기 볶음과 비슷한 외관에 맛도 비슷했다.
참치마요, 연어, 야끼니꾸, 날치알 등 맛있는 오니기리가 그렇게 많은데 다시마 볶음을 고르는 사람이 있다고?
왜 이렇게 맛없는 걸 골랐지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랜덤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면 평생 먹어보지 않았을 맛이라고 생각하니 못 먹을 맛도 아니었다. 최악을 선택하지 않는 내가 미쁘기만 했다.
우리에겐 이제 3개의 오니기리가 남아 있어! 앞으로 어떤 오니기리를 먹게 될지 설레!
첫 해외여행. 뭘 먹을지 어디에 갈지 정하기에 바빴고, 소소하게 거리를 음미하고 즐기지 못했다. 카페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며 멍 때리거나 하염없이 수다 떨며 친구와 시간을 보낼 새도 없이, 퀘스트를 수행하듯 이곳저곳을 누비기만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서 뭐할지 계획을 세우는 그 설렘도 좋지만 막상 여행의 시간에 던져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그 무계획이 더 설레기도 하다.
오니기리는 어리숙하고 괜한 기합이 잔뜩 들어갔던 첫 여행에서 유일하게 예측 불허한 일탈이었다.
요즘은 구글 지도를 검색해서 어디든지 편하게 갈 수 있고,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나온 시식평을 따라 뭘 먹을지 안전하게 정할 수 있다. 소중한 여행에서 실망을 최소화하고 싶은 그 마음은 맛도 재미도 검증된 특정 장소들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래도 가끔은 어떤 맛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고르던 오니기리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