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정떡, 산자 그리고 간재미회

당신께서 기억하는 손녀딸

by 청두유

친구에게 뜬금없이 말을 건넸다.


"나는 기정떡이랑 산자랑 간재미회무침을 좋아해. 기억해줘."


더 이상 이 기억을 지니고 있어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기억 전달자처럼 사명을 갖고 친구에게 저 세 가지 음식을 비밀코드 마냥 입력했다.


평소에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뽑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이 음식은 내 영혼을 달래주는 음식이야.", "이 음식은 우울할 때 꼭 먹어야해.", "오늘은 이 음식을 먹어야 하는 그런 기분, 그런 날이야."

갖가지 핑계를 달며 최애 음식들이 내 마음속에 순번표 없이 들어왔다가 잠시 머물다 가곤 한다.


그럼에도 저 세 가지 음식을 꼽을 수 있었던 것은 유독 할머니와 깊게 연결되어 있는 음식들이기 때문이다. 초콜릿, 마카롱, 피자, 칼국수, 떡볶이 등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수도 없이 많지만 할머니에게 나는 언제나 기정떡과 산자를 좋아하고, 간재미회를 맛있게 먹는 손녀딸이다.


사실 이 이름들은 모두 전라도 사투리인데, 기정떡은 막걸리를 넣어서 만드는 술떡이고, 산자는 찹쌀 반죽을 기름에 튀겨 조청과 쌀 튀밥을 무친 전통 과자, 한과의 사투리 이름이고, 간재미회는 살짝 삭힌 가오리를 매콤하게 무친 숙회이다.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 설날과 추석. 꽉 막힌 도로, 덥고 답답한 차 안에서 최소 10시간 이상을 보내야 하는 귀성길을 견딜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할머니 댁에 도착하면 저 음식들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2020년 설을 앞두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가끔 몸이 아프시다고는 했지만, 91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하셨고 농사까지 지으셨던 터라 할머니의 별세가 갑작스럽고 허망하게 느껴졌다.


약 8년 전부터 더 이상 시골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 큰집에서 명절 및 제사를 지내 왔는데, 2020년이 되니 갑작스레 시골이 그리워져서 다음에 날 좀 풀리면 시골에 내려가서 할머니를 찾아뵙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언제나 “다음에”는 늦는다는 말이 크게 와 닿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적절한 말이 또 있을까 생각하며 후회하고 울었다. 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시골에 갈 때마다 할머니께서 "아나, 이거 니가 제일로 좋아 안하냐." 하며 사랑을 꺼내 주시던 기억이 선명하게 저 음식들과 함께 떠올랐다.


#1. 기정떡

막걸리로 발효시켜 시큼한 냄새가 나지만 촉촉하고 포슬포슬한 술떡, 기정떡은 잘 상하지 않아서 냉장고 성능이 좋지 못하던 시골에서 여름에 먹기에 좋은 떡이다.

방앗간에서 술떡을 지어올 때면 떡끼리 붙지 말라고 얇은 비닐을 한 겹씩 붙여주는데, 그 비닐을 조심스럽게 잘 떼어내야만 맨질맨질하고 쫄깃쫄깃한 표면을 유지한 떡을 먹을 수 있다.


#2. 산자

산자는 바로 만들었을 때보다 살짝 시간을 두고 먹어야 맛있다. 조청이 튀김에 잘 배여 들어간 상태에서 살짝 굳어야만 쫄깃쫄깃한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안방과 작은방에서 친척들과 놀다가 출출해질 때면 부엌으로 걸어가서 한과를 하나씩 집어먹고 있으면, 할머니는 늘 어느새 부엌문을 열고 뭐 주랴? 곶감 물래?라고 물으셨다.


#3. 간재미회

기정떡, 산자는 그래도 택배 배송으로 집에서 받아먹을 수 있지만, 간재미회는 그야말로 다른 이야기다.

가오리를 사서 부드러운 뼈를 칼등으로 적당이 다져준다. 굵은 뼈는 발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고추장, 식초로 매콤 새콤하게 무쳐주는데, 키포인트는 미나리와 함께 무치는 것이다.

아삭아삭한 미나리, 쫄깃한 가오리 속살과 오독오독한 가자미 뼈를 같이 먹으면 심심할 틈이 없다. 밥 한 공기가 비워져 가는게 아쉬워서 어느새 밥 한 숟갈을 쪼개고 쪼개서 더 많은 가자미회를 먹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와 인연을 맺었던, 그리고 맺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나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겠지만, 이제 그 누가 이 세 가지 음식과 나를 연결시켜서 함께 기억해줄 수 있을까.

그 기억 사이에 켜켜이 쌓이고 새끼줄처럼 단단히 꼬인 할머니의 사랑이 할머니가 늘 잡아 주시던 손의 촉감처럼 내 손에 끈끈하게 남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주던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

영화 코코에서 죽은 사람을 기억해주는 이승의 사람이 사라지면 저승 세계에서도 완전히 소멸하는 영혼들이 생각난다. 정작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 세 가지가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한 가지도 답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할머니와 나의 기억은 여전히 할머니의 사랑 안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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