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식 칙피 라이스: 휴게소 음식인데 이렇게 맛있어?

by 청두유

병아리콩을 물에 하루 정도 불려 두었다가 삶아서 먹으면 그 맛이 꼭 밤 같다. 밤처럼 포슬포슬하게 부서지는 식감을 내기 위해서는 물에 삶는 것보다 밥솥에 찌는게 좋지만, 보통은 귀찮아서 그냥 삶아서 먹는다. 삶은 병아리콩을 우적우적 집어 먹는 모습을 보고 남자친구가 물었다.


“혹시 괜찮다면 병아리콩 요리를 해줄까? 터키식 라이스랑 같이 먹는 음식이야.”

새로운 요리는 언제나 환영인데, 맛있는 병아리콩으로 만든 요리라니 더더욱 환영이었다.



일단 터키식 라이스를 만든다.

버터(비건 버터 가능) 를 거의 밥 반공기 정도 넣어서 짓는 냄비밥이라 밥 색깔이 노르스름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다 지어진 밥은 언제나 뽀얗기 그지없다. 소금도 한두줌 과하게 넣으면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밥이 완성된다.

칙피라이스3.png 고소하고 짭짤한 밥이 완성됩니다. 사진이 누래보이지만 누렇지 않아요..:/


다른 냄비를 꺼내서 병아리콩 요리를 시작한다.

버터를 아낌없이 퍼서 냄비에 투척한 후에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와 섞어가며 토마토의 진하고 새콤한 향이 부엌을 가득 뒤덮을 때까지 익혀준다.

터키 요리에서의 토마토 페이스트는 우리나라의 고추장, 된장처럼 자주 쓰이는 식재료이다. 각 집마다 직접 담그는 장맛이 다르듯, 터키에서도 직접 토마토 페이스트를 담그기도 해서 집집마다 만드는 비법이 다르다고 한다.


토마토 페이스트는 버터 또는 오일과 함께 요리할 때 향이 잘 배어 나올 때까지 시간을 들여서 익혀주는 것 중요하다. 진한 토마토 향이 버터에 배여 나와 무의식적으로 냄비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대기 시작할 때 즈음 밀가루와 뜨거운 물을 부어주고 삶은 병아리콩과 깍둑 썰기한 고기를 넣어서 스튜처럼 푹 익혀준다. 병아리콩이 뭉근하게 부서지는 식감이 되면 요리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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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에 익힌 병아리콩(왼쪽)은 병아리콩스튜(오른쪽)로 재탄생했습니다!


칙피라이스.png 밥이랑 비벼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이 요리는 터키에서 트럭 운전사들의 음식이라고 한다. 장거리로 화물을 운반할 때 처음 들린 휴게소에서 밥 위에 병아리콩 스튜를 부어서 먹고, 다음 휴게소에 들를 때 또 먹는 그런 음식 말이다. 같은 음식을 계속 먹는다는 말에 슬퍼지려던 찰나에, 남자친구는 내 마음을 읽은 듯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 음식을 좋아해서 계속 먹는 거야. 맛있고 배도 든든하니까.”


실제로 이 요리를 먹고 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버터, 밥, 병아리콩, 고기 그리고 토마토소스.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의 적절한 조화와 함께 배가 쉽사리 꺼질 일 없고 여러 그릇을 쓸 필요 없이 밥과 스튜를 한 곳에 담아서 숟가락으로 섞어 가며 먹으면 그만인 간편한 음식이다.

파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에도 큰 들통 두 개만 있으면 1회용 용기에 밥 두세 주걱 스튜 한두 국자 퍼서 숟가락을 위에 꽂아주면 끝이니 깔끔하고 편할 것 같다. 간단하고 든든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휴게소 음식, 이 스튜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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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랑 먹기 지겨울 때면 빵에 발라 먹어도 맛있고(왼쪽), 물을 더 부어서 스튜처럼 먹어도 맛있어요(오른쪽).



우리 휴게소를 대표하는 음식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국은 땅이 좁은 편이라,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갈 때 휴게소에서 꼭 끼니를 때울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한 번씩 휴게소에 들러서 간식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설탕을 솔솔 뿌려 먹으면 고소한 알감자, 언제나 냄새로 모든 걸 다하는 델리만쥬, 호두과자는 한국 휴게소의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겠고, 최근 유명세를 알린 라이징 스타로는 소떡소떡이 생각난다.

이런 단순한 간식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시기가 있는데, 바로 명절 귀향길 그리고 귀경길이다. 이때는 그야말로 휴게소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어릴 적 명절 때만 되면 보성 할머니 댁에 내려가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출발하곤 했다. 차가 막히면 지옥의 고속도로에서 최소 10시간에서 20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우리는 늘 새벽 출발을 택했다. 집에서 간단히 밥에 국을 말아먹거나, 빵을 먹고 나서서 11시나 12시 즈음 휴게소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스케줄을 따랐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때 먹었던 음식은 터키식 병아리콩 라이스와 다르게, 휴게소에 있으니까 먹는 거지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휴게소에서 먹는 우동, 김밥, 찌개류 등은 늘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음식일 뿐, 다음 휴게소에서도 또 먹고 싶은 음식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개그우먼 이영자 씨의 휴게소 음식 리뷰를 계기로 각 휴게소마다 내세우는 대표 음식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휴게소 음식이 또 먹고 싶어질 날도 머지않았다. 사실 휴게소 음식은 맛으로 먹는다기보단 여행을 가는 들뜬 마음, 부모님, 친척들을 만나러 가는 반가운 설렘 사이에 살짝 끼워진 소소한 추억으로 먹는 것이 아닐까 싶다.

터키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사의 마음을 헤아릴 순 없지만 터키식 병아리콩 라이스를 먹을 때마다, 찌뿌둥한 몸을 움직이며 설렘을 마음에 다시 새기던 휴게소의 시간들이 생각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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