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공백
글을 정상적으로, 내가 바라는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는지 그 여부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지금 나의 감정과, 상태와, 머릿속에서 흩어지고 뭉쳐진, 떨어져 가는 어떤 것들을 그대로 떠내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형태를 갖춘 무언가로 접착시키는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때때로 우리의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가늠해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글을 써보는 것이다.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순간 바로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전과 같지 않구나.
혹은 전보다 나아졌구나.
심장을 누군가가 움켜쥐고 있는 것만 같다.
글을 쓰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원인은 꼽을 수가 없다. 굳이 골라봐도 모든 것이었고, 구태여 고르지 않았어도 모든 것이 원인이 된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언제나 늘 원인이고 계기였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발생하고, 일어나고 부딪히고 터지는 감정들이 축적된다. 찌꺼기처럼, 덕지덕지 쌓이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 신경 쓰지 않던 것들, 괜찮을 거라 여겼던 것들, 그 모든 게 응집되었을 때. 포기라는 선택지가 늘 나의 가장 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많은 것에 대한 포기의 욕구가 소용돌이친다. 일시적인 것에 대한 단념이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체념의 형태로.
꽉 쪼그라든 심장을 부여잡고, 죽음을 생각하도록 한다. 그것을 글로 기록하게 만든다.
내 것이 아닌 많은 부자연스러운 것들, 그것들이 도달하지 못한 해방을 활자로 엮어서 구멍을 뚫는다. 숨통이 트이도록, 스스로 무형의 호흡기관을 만들어낸다.
가끔은 그런 것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들이부어버리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먼저 시도해야만 했다. 타인은 어떻게 숨을 쉬는지 모른다. 적어도 내게는 이것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나는 진실로 내가 이 숨을 오래 연명하지 않았으면 해. 강렬하게 꾹꾹 눌러쓴 흉터 같은 자국들이 필요했다. 역으로 나의 불필요한, 유한해 보이는 어떤 것들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들의 손에 쥐여주고 싶다.
스스로에게는 아주 조금만 남겨두고 내 평생 심장에 박혀있던 것을 뽑아 큰 구멍을 내어주는 데 쓰고 싶다.
그러면 펄떡거리는 새빨간 것들이 겨우 안정을 찾을 것만 같다. 또 미안했다. 이건 늘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