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번째 공백
문득 연락처 속 당신의 이름을 찾았더니, 내가 당신의 번호를 지워버렸다. 번호란에 남긴 건 오로지 당신의 생일 네 자리뿐이었다. 아마 번호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깨달은 후였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주인을 잃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가 바로 끊거나
문자를 보내고 싶어 글자를 가득 써내리다가 전부 지워버리곤 했다.
어차피 닿지 못할 말들뿐이니까, 누군가 받더라도 그건 당신이 아닐 테니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아니 그런 이타적인 이유보다도 실은, 이미 세상에서 당신의 흔적이 지워져 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적어도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당신이 남긴 시와 글 한 조각이라도 이따금 찾아보게 된다. 속으로 오래 곱씹게 된다. 당신의 목소리로 감히 상상하게 된다.
당신의 기일이 다가온다. 보고 싶다. 너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