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번째 공백
잠시 본가로 내려와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면서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오랜만에 꺼내 읽었다. 익숙하고 솔직한 문장들을 통해 나는 또 위로와 공감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고 나면, 따뜻한 고향의 봄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아빠의 죽음을 되풀이한다. 습관처럼.
꽤 오래 떠올리지 않았던 날이 있다. 아빠의 장례가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만 하는 날이었다. 돌아가서 이전처럼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을 마주해야 했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 아빠를 잃은 슬픔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고작 3일로는 내 슬픔의 몇 할 정도를 겨우 달래기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가기로 했다. 다만, 어느 시점에 등교를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교실로 늦게 들어가면 반 친구들이 모두 나를 볼 것만 같았고, 너무 일찍 들어가면 이후에 등교하는 친구들이 모두 나를 볼 것만 같았다. 그들이 어떤 시선으로 나를 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몇 명의 시선이든 나를 향한 것이라면 전부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내가 피할 수 있는 것은 후자라고 생각하여 텅 빈 학교에 정말 일찍 등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래도 같이 등교를 하던 친구에게 그날도 평소처럼 같이 가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묻는 것이 두려웠다. 그 물음이, 내 존재 자체가, 소중한 친구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았으니까.
등교를 하고 난 뒤로 어떻게 수업시간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하필 그날 우리가 배워야 되는 작품의 내용이 가족에 대한 것이었음은 기억한다. 덕분에 나는 당장 수업 중에 눈물이, 아니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울어버리면 수업 분위기를 망쳐버리겠지?', '차라리 밖으로 나갈까? 하지만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가면 그것도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그건 선생님께도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황당스러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어린애가, 이런 걱정을 대체 누굴 위해 했던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들과 함께 울음을 꾹 집어삼켰다. 펜을 쥔 손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힘을 주고 버텼다. 혹시라도 흐느끼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갈까 무서웠다.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나를 배려해 주셨던 건지 선생님은 그날 수업을 일찍 끝내주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울어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교실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울었다.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참았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목놓아서 소리치고 울고 싶었다. 너무나도 큰 서러움이 북받쳐오는데, 학교와 교실이라는 이 공간이 나를 옥죄어왔다. 내 목구멍을 쪼아대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답답한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지,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도저히 혼자서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 나는 그 모든 것들을 판단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당시의 내 어떤 행동도 친구들과 선생님들께는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서러워서 목놓아 울고 있어도 모두가 이해해 줬을 것이다. 당시의 나는 내 감정에 따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나는 그걸 스스로 억압하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서야 교실을 나가는 게 나을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친하지 않은 아이들이 당황스럽게 수군거리던 말소리-아마 나는 이것을 가장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사이로, 하나둘 따뜻한 손길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엎드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또 누군가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마주 잡아주었다. 등을 토닥여주는 온기를 따라 나를 닮은 작은 흐느낌마저 들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은호야, 울어도 돼. 괜찮아…."
내 손을 맞잡은 또 다른 손이 더 세게 내 손을 붙잡아주었다. 친구들이 나를 위해 또다시 울어주고 있었다. 울면서 나를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 목소리에 나는 참았던 서러움이 기어코 터져버렸던 것 같다.
"미안해, 은호야. 더 빨리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더 울어, 편하게 울어. 우리가 다 가려줄게."
그 애들이라고 나를 위로하는 법을 알았을까. 어떻게 대하는 게 가장 자연스럽고, 나를 위한 것인지 그들이라고 바로 알 수 있었을까. 나도 모르는 것들을 그 작고 어린 친구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저 혹시라도 자신들의 작은 언행 하나하나가 나에게 상처가 될까 봐 걱정되어서, 되려 한없이 조심스럽기만 한 표정과 목소리와 다정한 손길들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바랬던 것은 아마 겨우 하나였을 것이다. 괜찮다고, 이상하지 않다고. 이상하게 보지 않겠다고. 내 슬픔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주고 평소처럼 손을 내밀어주는 그들의 마음 단 하나만을 바랬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은, 나에게 기꺼이 그 마음들을 내어준 것이다.
나는 그 소중한 순간을 마음 깊은 곳에 또렷하게 담아두었음에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꺼내보지를 못했다. 쉽게 꺼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빠의 죽음, 그 순간은 봄내음을 들이켜기만 해도 당장 어제의 일처럼 되살아나는데, 그때의 나를 안아주었던 온기들은 계속 속에 묻어둔 채로 남겨두었다. 무서웠던 것 같다. 자꾸 꺼내다 보면 기억이 닳아질까 봐, 그래서 그 소중함을 내가 잊어버릴까 봐, 그리고
당연하게 내 슬픔을 이해해 주던 그들의 마음이, 그 순간들이 그리움을 넘어 욕심이 날까 봐.
사실 나는 아빠의 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떠올리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쓴 그날이 정말 많이 그리워지곤 했다. 오늘도 그런 수많은 날 중 하루였다. 해진 애도와 상처를 반복하는, 의미 없는 그리움만 커져 가는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