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공백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호 Oct 17. 2022

내가 몇 번이고 말해줄게, 그 말에 몇 번이나 울었다.

스물두 번째 공백


“네가 너를 못 믿을 것 같을 때는 나한테 물어봐, 내가 몇 번이고 대답해줄게.”

“너는 널 좀 믿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어! 야, 우리가 너를 이렇게 믿고 있는데 우리는 믿으면서 너는 안 믿냐?”


툭 툭 던진 말에 웃음이 났다. 내심 듣고 싶은 말이었다. 누구에게든 듣고 싶기도 했지만 네게서 들으면 더욱 진심으로 격려가 되었다.


**


“네가 자신 없어질 때면 내가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몇 번이고 계속 말해줄게. 그러니까 계속해, 계속해도 돼. 포기하지 말고.”

“물론! 네가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는 그만둬도 괜찮아. 그래도 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누군가 ‘듣고 싶은 대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그 대답만 하면 된다’고 했던가. 실은 그게 맞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진실로 그 말이 듣고 싶었다. 모든 걸 알면서, 확신하면서 그저 듣고 싶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말,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도 된다는 말. 그 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책하면서 또다시 내가 한없이 초라하다 느껴지는 날이면, 나는 너에게 물었다. 너희에게 나를 털어냈다. 그러면 너는, 너희는, 나를 꾸짖듯이, 당연한 걸 왜 또 혼자 땅 파냐는 듯이 잘하고 있다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


“야, 걱정하지 마. 난 네가 백 년 동안 계속 같은 말해도 질려할 생각 없으니까 그냥 말하고 싶을 땐 말해. 네 마음이잖아.”

“그래~ 네가 한 80살쯤 되면, 그때는 네가 믿을 수 있게 되겠지 뭐~ 우린 그때까지 옆에서 계속 말해줄 거니까.”


가끔 세상이 너무 크고 무겁게 느껴질 때, 무겁고 둔탁한 공기에 짓눌려 내가 사라질 것 같을 때. 내 한 생이 터무니없이 짧고 나약하게 느껴질 때.

잘 지내는 것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이 오면 하릴없이 무너지고 말아서, 그래서 또 허상조차 남지 않은 한 줌 기억 속 존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을 때.

실은, 아주 조금은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고 싶어질 때. 너는, 너희는 나에게 너무나 아득한 시간들을 기약해버린다. 그것도 정말 당연하게. 내가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안 너희는 끊임없이 나를 끌어당긴다. 내 흩어져 부유하는 것들을 전부 끌어모아 꽉 붙잡는다. 나도 평생 나에게 해줄 수 없었던 것들을 매번 너희의 말 한마디가 해내고 만다.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음과 함께 감히 갚을 수 없는 생을 연장한다.

너희 없이 살 수 없는 비참한 존재가 아닌

너희 곁에서, 너희와 함께 할 수 있는

그저 나라는 존재로 살아있기 위해서.


유년시절의 나를 말리고 천천히 죽여갔던 눈물은 이제 조금씩 방울져 세상의 중심으로 모인다. 큰 웅덩이가 되어서, 내가 딛고 선 세상을 맑게 비추어주려고.


이건 줄곧 너희로 인해 흘린 눈물들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의 유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