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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호 Aug 29. 2022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의 유년.

스물한 번째 공백

어릴 적에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때의 나는 수학학원, 영어학원보다 주말에도 놀지 못하고 꼬박꼬박 가야 하는 미술학원이 제일 싫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내가 달에 두어 번은 꼭 부루퉁한 얼굴로 학원에 왔다고 한다. (근데 그럴 만도 하지 않나..)

하지만 그런 못난 모습을 보여도, 선생님 눈에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였다고 한다. 매일 예쁜 옷 입고 부모님 손 잡으며 학원에 오는 모습이라던가, 부루퉁해 있다가도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열심히 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 그랬다더라. 애교도 많은 아이가 매사 열심히 하고 주변에 늘 살갑게 굴었으니, 정말 집에서 사랑 많이 받고 두루두루 아낌 받으며 곧게 자란 티가 났다고 했다. 당시 학원에 오는 모든 아이들을 통틀어서 내가 제일 사랑 많은 아이였다고 할 정도로.

실제로 나의 주변은 늘 나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부터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이제와 나는 꼭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지금은 어릴 적의 성격이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나름대로 귀여웠던(?) 어린 시절 얘기를 잠깐 꺼내본다.



***



실은 우리 엄마가 막 나를 임신했을 때, 외할아버지와 아빠의 건강이 모두 안 좋아졌다. 아빠는 다니던 직장도 관둬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으니 그 상황에 엄마만 직장생활까지 버텨야 하는 게, 엄마의 아버지인 외할아버지 눈에는 마뜩잖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의지가 정말 강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무어라 말을 얹는 대신 외할아버지는 내내 엄마 뱃속의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셨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1달 전부터 아빠도 외할아버지도 건강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날 즘에는 아빠의 상태도 정말 많이 좋아지셨고, 그 밖의 여러 좋지 못했던 집안 상황들도 전부 해결되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막 태어난 나를 복덩어리처럼 여겼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나만 보면 예쁘다는 마음과 미안함이 항상 공존했다고. 그래서 어릴 적의 나를 매일같이 옆에 끼고 살며 놀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정말 많이 아껴주셨다고 했다. 어디 외출하실 때면 꼭 나를 데리고 나가서 동네 사람들한테 손녀 자랑을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자랑하려고 데려나간 손주가 처음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도 싹싹하게 굴어 동네 어르신들이 모두 나를 예뻐하기만 하셨고 또 외할아버지를 엄청 부러워하셨다고도 했다.

와중에 계속 '~하더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외할아버지에겐 죄송하지만.. 나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저 모든 시간들의 내가 너무 어렸던 탓이다. 이렇게 전해 들은 이야기들 중 딱 하나 온전히 내 기억으로 남은 것은 '외할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비행기 놀이를 해준 것이 즐거웠다'는 단편적인 기억뿐이다. 하지만 이 기억 하나만으로, 나는 외할아버지가 날 못마땅해했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좀 충격을 먹었던 것 같다. 나와 놀아주던 할아버지의 표정이 굉장히 행복해 보였기 때문에 외할아버지는 나를 정말 좋아했다고,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또 엄마 말로는, (어릴 적의) 난 진짜 어른들에게 애교가 많아서 엄마 직장 동료분들은 물론 친척 어르신들에 옆집 사는 아주머니까지, 나만 보면 다들 그렇게 딸을 낳고 싶다고 했다더라. 특히 옆집 아주머니는 아들만 있는 집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나를 정말 귀여워하시면서 매일같이 '은호 같은 딸이 있으면 아줌마 소원이 없겠네!' 하셨다. 그런데 얼마 뒤 정말로 쌍둥이 딸을 임신하셨다. 우리 가족을 만날 때마다 딸들을 꼬옥 나처럼 키울 거라면서 정말 기뻐하셨다는데.. 이쯤 되면 조금 놀랍기까지 했다. (부디 나보다 훨씬 더 착하고 예쁜 아이들로 자랐기를..) 아무튼, 이런 것들만 보아도 어릴 적의 나는 누가 봐도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옛날의 내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꼭 남의 얘기를 하는 것만 같다. 내가 그랬다고? 싶을 정도로 그 성정이 너무 아득해졌기 때문에. 나에게 사랑을 담뿍 내어주던 이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고, 철이 들 무렵부터의 나는 '사랑 많이 받은 티가 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말 그대로 철이 들면서 언행이 차분해진 탓일 수도 있겠으나 나이가 몇이 되었든 티가 날 사람은 다 티가 나기 마련이다.

이제서 타인이 나를 표현해주는 말들 중 '착하다, 다정하다, 친절하다'와 같은 것들은 그렇게 몸에 베인 사랑이나 애정과 완전 별개의 노력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노력 없이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나는 되려 나를 향한 애정과 사랑에 목말라있었다. 어쩌면 결핍된 본능이 노력한 결과가 나를 '다정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 건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은 타고난 모습이 아니므로 나는 타인의 눈에 내가 너무 필사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그것이 늘 걱정이었다. 그 필사적으로 사랑을 받고자 하는 노력들이 역으로 누군가의 눈에는 안쓰러워 보이기만 할까 봐. 그래서 그것들을 애써 숨기고 다정하고 사랑 많은 사람인 척 살아가는 것이 어른이 된 내게 가장 익숙해져야 하는 겉치레가 되었다.


나의 유년 시절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너무 가득 받은 탓에,

나는 여전히 그 여린 사랑들을 그리워하면서 욕심쟁이 같은 어른으로 살고 있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나의 삶은 행복한 유년이었고, 서러운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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