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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답게 May 09. 2022

멋 모르고 달게 된 ‘엄마’라는 이름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응애~~~ 응애~~~”


1박 2일의 산고 끝에 드디어 아이는 나의 품에 안겼다.

작고 야무진 입술은 세상 앞에 엄청난 다짐이라도 한 듯하다. 평생 내편을 얻은 것 같은 든든함과 이 세상에 건강하게 태어나 준 아이가 기특하여 벅찬 감격이 휘몰아친다.


이제 엄마가 되었으니 아이가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도와주고 싶다. 그리고 잘 키우고 싶다. 이런 다짐이 저절로 생기는 순간이다.







아이를 만나기까지 서사 연예, 독립 그리고 결혼.




남편과 나, 우리는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대학교 1학년.

교회 오빠, 동생 사이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일상의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는 그리고 가끔은 밥도 먹는 그런 사이 말이다. 만남이 잦다 보니  감정을 얘기하는 사이가 되었고  남편의 편안함에 점점 스며들다 나의 적극적인 대시로 연예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 그런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연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용기이다.



남편과 연예하기 전 결혼은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더래요.라는 이야기는 내 삶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내가 본 결혼은 전쟁과 같았다. 서로 사랑하고 든든하게 내편이 되어주는 관계가 아닌 남보다도 못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난 그런 관계였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힘들게 할 바에는 그냥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졸업 후 처음으로 들어간 직장에서의 포부는 당차고 컸다.

실력 있는 그리고 따뜻한 간호사가 되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이왕이면 공부도 많이 해서 높은 직급까지 달고 싶었다. 그러나 첫 직장의 삶은 내게 너무나 벅찼다. 근무시간 외 일이 많았고  직장 내 괴롭힘 일명 태움이 심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져 갔고 억울한 일을 더 이상 참기 어려웠던 나는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에게 기대가 컸던 부모님. 자신들의 자랑에 미치지 못하자 실망했고 화를 냈다. 내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하자 결국 아버지의 화는 매로 바뀌었고 나는 진짜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24세 자녀의 독립은 자연스럽고 반가운 일이다. 육아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기에  자녀의 독립에 누구보다 반가울 사람은 부모일 것이다. 그러나 괜찮은 직장을 그만둔 것에 화가 난 아버지는 나의 독립도 결혼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부모여도 직장을 그만두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겠다는 자식의 선택이 걱정될 것이고 쉽게 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대화 방식은 일방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 그것은 자식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보다는 내 뜻대로 살지 않는 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괘씸죄에 가까웠다. 나는 안다. 아버지가 화나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것을.. 아버지 눈 밖에 난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직장을 다니며 아버지 화가 누그러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새로운 곳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처음으로 월세 계약을 했다. 전기세를 얼마나 내면 적절한지도 모르고 주인아저씨가 달라는대로 덤터기를 쓰기도 했다. 가끔 기름보일러 도둑이 기름을 훔쳐간 날은 얼음장 같은 방에서 전기장판만 틀고 추위를 견디야 했고 한 여름에는 찜질방 같은 방에서 땀을 흘리며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낯설었다. 마음은 편했지만 몸은 힘든 시간이었다.



8개월이 지났을까.. 어느 날 부모님이 자취방으로 왔다. 그동안에 화가 풀리셨는지 어떻게 사는지 보러 오셨다. 너무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결혼을 해야 했기에 나의 감정을 선뜻 드러내지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는 도저히 더워 잠을 잘 수가 없었나 보다. 다음날 아침 집 근처 에어컨 가게 문이 열리자마자 그곳으로 향한다. 벽걸이 에어컨 하나를 결제하고는 말한다. “넌 그동안에 어떻게 살았노?” 속상함과 짜증, 화가 섞인 목소리다. 밤새 더워 한숨 못 주무시면서 많은 생각과 감정이 드셨나 보다. 그렇게 우리의 화해는 에어컨 하나로 퉁쳤다. 일방적이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축복 아래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시작된 둘이 하나 된 인생.

그리고 찾아온 자녀라는 귀한 선물.

결혼 전 서사는 길었지만 결혼 후 아이는 급하게 찾아왔다.

그러면서 달게 된 '엄마'라는 이름.

준비되지 않았지만 마냥 기뻤고 반가웠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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