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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Dec 01. 2023

누구에게나 좋은 교사는 없다

치유와 성장의 저널링

로버트 프리츠, 웨인 스콧 엔더슨이 쓴 [정체성 수업]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의 에비니저 스크루지 역을 연기한 앨러스터 심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이 바보라고 결론지은 것이다. 높은 자존감을 의무처럼 여기고 살던 시기에 심은 그 결정으로써 어깨를 짓누르던 짐을 내려놓은 듯한 새로운 자유를 경험했다고 한다. 자신이 바보라는 걸 인정하고 나자 더 이상 똑똑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 즉 바보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갑자기 에너지가 몸속을 넘쳐흘렀고, 무엇보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 즉 자기 훈련과 연기의 예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앨러스터 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그럴싸한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나니 그 에너지가 더 필요한 곳에 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는 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나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은 교사라는 타이틀을 간직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했다.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친절하고 더욱 상냥한 교사,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교사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이라는 말은 ‘좋다’의 활용형으로 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거나 선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와 학생들,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좋은 교사는 일치할까? 분명 사전적 정의로 좋은 교사는 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고 선한 교사이다. 하지만 일부 학생, 학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교사는 공정함보다는 자신이나 자신의 자녀에게 우호적인 교사이다. 교사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좋은 교사는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좋은 교사는 아닐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나 좋은 교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누구에게나 좋은 교사가 없다고 생각하니 교사로서 어떤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가를 더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학생들이 올바른 생각을 하며 자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옳고 그름, 바른 삶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이것을 아동학대 고소나 교권침해 등의 이슈로 인해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교사라는 허울을 내려놓고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니 그런 것들이 덜 두려워졌다. 그리고 정년이 보장되는 교직이라지만 아동학대 고소와 교권침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다시 가르칠 용기가 생겼다. 얼마 전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로 적발되자 감독관의 학교로 찾아가 폭언을 한 학부모에 대하여 서울시 교육청이 협박,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발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렇게 고발이 가능한 것은 교사가 절차대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칠 것을 가르쳤다면 겁먹지 말고 원하던 바를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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