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교사 정쌤 Dec 10. 2023

학교에서만이라도 무용의 가치를 가르칠 수 있기를...

치유와 성장을 위한 저널링

지난주 큰아이가 아파서 학교도 하루 빠지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수액도 맞았다. 다행히 독감은 아닌 세균성 바이러스로 인한 염증이 심한 탓이었다. 오전 수업이 없는 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 출근을 하면서 강신주 교수의 ‘쓸모없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내용의 장자수업을 들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영상이었는데 그날 내게 온 영상이었다.


내가 쓸모없어도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무용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자녀를 사랑할 때, 부모를 사랑할 때, 우리는 이 사람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를 생각해서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너는 공부를 해서 어느 대학을 가야만 한다고 하면 아이는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자신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부모가 어떤 말로 아이를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영상이었다.


이가 아파서 학교를 못 가겠다고 하며 누워 있을 때 내 마음은 복잡했다. 안쓰럽기도 하고, 왜 이리 자주 아플까 속상하기도 하고, 얼마나 공부했다고 아프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신주 교수의 영상을 보면서 내 마음이 왜 복잡했는지 알았다. 아이를 무척 사랑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길 강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스스로도 어느 자리에 있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기에 그게 최선인 줄 알고, 자녀 교육을 하면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라고 가르쳤다. 학생이니 학교를 다니며 하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나 스스로 얼마나 이런 질문을 많이 했던가 싶다. ‘나는 쓸모가 있는 사람인가?’ 나 스스로 참 많이 채찍질하며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냥 존재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게 가족인데, 내가 내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너무 많이 주입하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참 애쓰고 있는데 내 기준에 못 미칠 때 얼마나 다그치는 말을 했던가 싶고, 아픈 아이에게 처음부터 안쓰러워하지 못하고 복잡한 감정을 가졌다는 게 미안했다. 무용의 가치를 나 스스로부터 인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기에 어떤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녀가 그렇고 부모가 그렇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공공의 것들이 그렇다. 내가 누리는 자연이 그렇다. 내 아이가 아프면, 공부를 못하면, 일을 못하면 내 아이가 아닌가? 그런 것을 못해도 충분히 사랑해 주는 부모여야 하지 않을까. 공기와 물, 땅, 하늘, 산과 바다, 이 모든 것들의 존재로서의 가치를 우리는 잊고 산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이와 더불어 공교육의 가치도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기에 학교마저 멈추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학교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다. 그해 아이들은 학교에 올 때마다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모른다. 화면 속에서만 보던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던 첫날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학교와 학원은 직접적인 비용을 지불하느냐의 차이로 인해 가르치는 것도 성격이 다르다. 그렇기에 학교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무용의 가치를 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관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친절, 배려, 나눔, 성실, 근면, 봉사, 감사, 겸손, 이해, 도움, 존중, 정직, 진실함, 협동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배우게 된다. 학교는 이런 가치교육과 무용의 가치를 전하는 역할에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러한 것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학교에서 가치들을 가르칠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를 존재 자체로 소중하게 인정해 주는 가치들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쓸모를 이야기할 때, 학교에서만은 학생들에게 ‘너희들 모두 존재 자체로 소중하단다’ 수없이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정에서도 자녀를 존재 자체로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을 전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인공지능이라면 학생들의 관계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