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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Dec 09. 2023

인공지능이라면 학생들의 관계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치유와 성장을 위한 저널링 

5학년은 발야구를, 6학년은 배구를 가르쳤다. 모두 체육 교과의 경쟁 영역으로 학생들이 상대팀과 경기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고 협동하여 게임을 하며 배우게 된다. 몇몇 학생들은 게임을 하면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팀을 정하고 나면 ‘밸붕-밸런스 붕괴-’이라며 바꿔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게임을 할 때마다 듣는 소리였지만 오늘은 이야기를 하고 넘어갔다.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00 이를 상대팀으로 바꾸면 밸런스가 맞을 것 같니? 양팔 저울의 균형이 맞는 것처럼 그런 밸런스 균형은 없어. 어느 팀이 조건이 좋아 보일 수는 있어. 하지만 정말 그 팀이 이길까? 경기는 해 봐야 아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하는 것은 우리가 배운 기술을 써보면서 협업을 해 보는 기회를 갖는 거지. 이기는 것, 좋지? 하지만 이기지 않아도 내가 그 팀에서 한 게 남잖아. 그냥 해보면 안 될까? 누가 밸런스 붕괴라는 말을 할까? 잘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까? 왜 자신이 더 잘해서 이길 생각은 안 하고 밸붕이라고 남 탓을 하는 거지? 게임에서 이기면 기분 좋겠지. 하지만 ’져도 괜찮다. 우린 졌잘싸 할 수도 있잖아 ‘ 그러니까 그냥 해 보면 좋겠네’ 어찌 된 일인지 5학년, 6학년 모두 게임활동을 하는데 팀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내가 한 일들을 돌이켜보니 학생들 간의 관계에서 참 많이 애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게임을 하는 사이에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은 이렇게 하는데 왜 상대팀은 저렇게 하느냐, 하나하나 승패와 관련되어 손해 볼 것 같으면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중재해 주는 역할을 많이 한 날은 정말 피곤한다. 내 몸이 땅으로 꺼질 것만 같다. 


학생들을 중재해 줄 때 인공지능처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소한 감정소모 없이 옳고 그름만 판단해서 사실만 전하고 판단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학생들의 문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모든 사건의 시작엔 관계한 학생들 간의 감정적 얽힘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들은 결과가 좋게 끝나지 않기 때문에 그 과정에 중재자로 참여한 교사의 마음이 참 불편하다. 그 결과가 마음에 안 드는 학생과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하기도 하는 것이고. 


오늘 한 반의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생긴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랐지만 잘 해결되지 않았다.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애썼지만 학생들이 서로의 뜻을 굽히지 않아서 교사 입장에서 개별연습만 하도록 지시를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참 의미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을 통한 학생의 변화는 정말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또 한 번 증명이 된 것인가.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며 애써 노력하며 가르쳤는데 오늘 학생들의 태도를 보니 학생들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학생들에게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일관성 있게 괜찮지 않았는데 나만 몰랐나, 나만 변화되어 간다고 생각하고 착각을 했던가. 교사는 학생들을 짝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느낀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교사들은 이렇게 학생들 간의 많은 문제를 중재하는데 일과 중의 많은 시간을 쓴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성과도 없는 것에 아주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교육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학생들의 많은 문제를 관찰하고 함께 봐주고 이야기 나누고 공감해 주는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닐까. 이 과정에서 무례한 학생들에게 생활지도를 하게 되는데 정서학대로 고소당할까 봐 많이 꺼리는 경우가 많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어야 하는데 학생의 기분상해죄로 못하는 말들이 많아지면서 가끔씩 문득문득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오늘은 복직하면서부터 힘든 반의 수업을 하고 나서 ‘학생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변한 것처럼 보였을 뿐 오히려 내가 학생들에게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되면 좋은 점은 이런 감정소모가 없을 것이라는 것. 그런 면에서 인공지능 교육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공감형 인간인 나는 가끔씩 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삶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프다. 필요한 정도로만 공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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