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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Jan 07. 2024

'글쓰기의 유년기'를 충분히 누려 보자


유년기는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목적의식 없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한다.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목적에 갇히지 않는 어린아이의 시간이 크나큰 자산이다.

"글을 못 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 쓴 글이 잘 쓴 글입니다."

나 또한 글쓰기 책을 섭렵하듯 읽었지만 글은 아는 대로 써지지 않았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유용한 팁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고 제 몸으로 써나갈 때 자기만의 언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잘 쓸 수도 없다. 목적에 갇히지 않아야 이것저것 시도하는 놀이가 되고 재밌어야 계속 쓴다.

... '글쓰기의 유년기'를 편안하고 충분하게 누렸으면 좋겠다. 유년기도 없이 너무 일찍부터 수험생 모드로 진입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목표가 없으면 심심하니까 이런 정도는 권해드린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가족(없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같은 것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지음, 김영사


어제 오후에 탁구장에 개인 연습을 하러 갔다. 로봇으로 탁구 연습을 하는데 회원님 한 분이 천천히 치라고 조언을 해준다. "걷지도 못하는데 달리려고 하면 안 돼요. 천천히 공을 치며 근육을 키우는 연습부터 하세요." 이 말을 듣고 평소와는 다르게 속도를 낮춰서 공을 쳤다. 이전에는 천천히 공을 치면 재미가 없어서 몸이 풀렸다 싶으면 공의 속도를 올려서 치곤 했다. 정신없이 공을 치다 보면 내 머릿속의 잡념도 사라지고 팅팅 소리가 나는 탁구공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초보에게는 안 좋다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천천히 치며 내 동작들을 하나하나 느낄 수 있었다.


은유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유년기'를 편안하고 충분하게 누리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글을 쓰면서 왜 자꾸만 조급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또 열심히 글을 쓰며 수험생 모드로 진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민했고 나의 예민함은 아이들에게, 내 건강에 좋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고자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난 이후이다. 그 이전에는 블로그에 글을 쓰긴 했어도 글을 더 많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작년 가을, 갑상선암 수술을 앞두고 글을 써서 남기고 싶어졌다. 나는 이제 글쓰기의 걸음마를 시작하고서는 책 쓰기를 하고 싶다는 명분으로 달리고자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성격 탓도 있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걸을 수만 있으면 달려서 바로 결과를 내고 싶어 하는 성향이다. 아프면서 조금 조심하나 싶었는데 여전히 달리려고 시동 거는 나를 보고 좀 더 천천히 나를 돌보며 가자고 다독거렸다.


다시 멈추어 서서 나를 되돌아보니 나에게 글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글을 써야 숨이 지어지는 순간들이 많았고 글을 쓰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각들을 정리했기에 힘든 시간을 잘 버텨왔다.


내가 내 삶을 편히 글로 쓸 수 있다면 분명 내가 겪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글에 녹아 나만의 언어로 전달될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은 서툴겠지만 시간이 쌓이면 분명 더 좋아지리라. 그러니 지금은 부족해도 나만의 언어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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