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양이 된 나를 보듬어 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모닝 너머 책쓰기
교사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몸도 마음도 아파서 쉬던 중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었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철철 흘러내릴 것 같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 안에 상처를 안고 책을 읽으면서 수십 장의 인덱스를 붙여가며 문장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라는 프롤로그의 제목마저 나를 위한 것 같았다.
수없이 물어보고 싶었던 물음들에 이어령 교수는 이야기했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남의 신념대로 살지 마라. 방황하라. 길 잃은 양이 돼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 열림원)
내가 그토록 아팠던 이유들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의 자유의지를 꺾고 남의 뜻으로 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더욱 아팠다. 나는 앞으로도 학생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는 교사이고 싶고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거운 교사이고 싶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마치 손이 묶인 채 땅에 끌려가는 모습처럼 느껴졌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떠오를 뿐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어서 학교를 쉬었고, 그해 여름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수술 날짜를 잡고 난 후 나는 오히려 덤덤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토록 참을 수 없이 아팠구나.' 어쩌면 신은 나를 아시고 암이라는 선물을 주신지 모르겠다. 나의 아픔이 조금 더 치유될 수 있도록.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시련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시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는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에 내가 받은 시련조차 내게 중요한 것을 알려주기 위해 온 선물 같았다. 암에 걸렸지만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이어령 교수님의 말씀은 다시 잘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전까지 나는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남들과 비교했고,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항상 확인하고 이기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 좋은 선생님, 믿음직한 동료교사, 일 잘하는 업무 담당자이고 싶었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내어주며 잘 키우는 현명한 엄마, 집안도 깨끗하게 정돈하며 살림도 잘하는 아내이고 싶었다. 가정, 일, 나의 삶에서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욕심부렸고 그것이 나의 만족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괜찮아 보이길 원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나서는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 잘 살아보고 싶었다. 나답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바깥으로 향했던 안테나를 내 안으로 향하게 하는 것, 그래서 나를 더 관찰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산다는 것은 '길 잃은 양'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의지대로 '큰 감자와 작은 감자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고 '화문석을 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님은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 예술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삶, 주체성 있는 삶, 내가 다시 살아내고 싶은 삶이었다.
2023년 여름, 서이초등학교 신규 교사의 죽음으로 학교 안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교권침해와 아동학대 고소라는 이름으로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없는 교육 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죽은 교사를 추모하는 글에서 '나는 당신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았다. 그동안 학급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교사 개인이 온전히 감당했다. 학급의 학생이나 학부모와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것은 교사 개인이 잘못해서, 교사 개인의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알고도 나만 아니길 바라며 그 순간들을 지나왔기에 우리는 모두 공범이었다. 그랬기에 많은 교사들이 함께 아파했고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를 참여하면 참여할수록 나와 같은 동료들이 있어서 상처받았던 마음이 치유되었다. 나의 예민함으로 괴로웠는데 집회에 가니 나처럼 아팠던 사람이 이토록 많다는 것에 위로가 되었다.
“나는 제일 처음 운 녀석의 '삑' 소리를 들은 거지. 깜깜해서 다 잠들었는데 혼자 깨서 삑 하고 운 녀석...... 어둠 속에서 새벽의 미세한 빛이 눈꺼풀로 스며들 때 그걸 느낀 예민한 녀석인 거야.”
“얼리버드나 퍼스트 펭귄 같은 계도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그 예민함을 이야기한 거네. ’새벽인가?‘ 긴가민가하며 우는 새, 그러면 다른 놈들이 맞장구를 쳐서 '야! 맞다' 같이 울면 새벽이 오거든.... 제일 먼저 우는 놈이 있다는 걸세. 울음만 그런가? 방향을 바꿀 때도 그래. 함께 날아가다 최초로 각도를 트는 놈이 있는 거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 열림원)
죽음을 택했던 선생님의 예민함 덕분에 우리는 학교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아니지 않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인가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그들의 목소리에 우리가 뒤따라 나서고 있다. 교사의 본질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교육현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해 2학기 복직을 하면서 교사로서 상처받고 힘들었을 때도 '다시 한 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배우는 교사로서의 삶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다시 알아차리고 노동이 아닌 예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이 힘들수록 나를 더 들여다보았고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끊임없이 물었다. 남들의 신념이 아닌 나만의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삶을 위해 언제든지 ‘길 잃은 양’이 되어 방황하리라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