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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Aug 23. 2024

학교의 시간이 나에게 참 어울린다

치유와 성장을 위한 글쓰기 

우리 집에서 제일 지저분한 곳이 있다. 바로 내 책상이다. 깨끗하게 정리를 해도 일주일이 지나면 비슷한 모습을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학교 책상은 깨끗하다는 것이다. 언제든 아파서 못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안 이후로 퇴근할 때 마지막을 인사하듯 정리하고 나온다.


오늘이 여름방학 마지막 날, 지난주 출근해서 교실을 환기하고 학생들과 할 학습지며 수업내용을 정리하고 왔기에 오늘은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오전에 치과 진료가 있어서 진료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라테를 사들고 왔다. 쇠고기 한 판 구워서 나를 위한 만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작년 복직하기 전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때의 나의 마음은 참 비장했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과 나의 병가, 병휴직이 못마땅했던 관리자와의 재회, 그리고 여전히 아픈 몸. 때마침 9월 4일은 서이초 교사의 49재여서

많은 선생님들이 병가, 연가를 내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나는 12월 갑상선암 수술 이후 미리 예약한 대학병원 진료일이었다. 그로 인한 병가를 9월 1일 복직하자마자 이야기해야 했다. 교육부 장관이 관리자들에게 병가, 연가를 허가하지 못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나는 9월 1일 퇴근하면서도 병가 승인을 받지 못했다.


저녁 6시까지 퇴근하지 못한 채 관리자의 승인을 체육관 옆 창고 같은 체육교사실에 앉아 기다렸다. 노을 지는 창가, 수많은 체육기구, 먼지가 뿌옇게 떠다니는 체육교사실에 앉아 있다 보니 서이초 교사가 생각났다. 문득 그 선생님은 죽으려고 학교에 남은 것은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다 보니 늦어졌고 그러다 잠시 그곳에 있는데 그 시간, 그 공간, 그 모든 것들이 선생님을 그렇게 이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날 그렇게 울면서 노을과 어둠이 깔리는 체육관 안 체육교사실에서 6시까지 기다린 후 퇴근하면서도 결재는 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일요일 오전에 병가를 내라는 연락을 받았고 월요일 대학병원 진료를 잘 받고 왔다. 그랬다. 복직했던 그날, 나는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일화를 시작으로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혀 아래에 도끼 들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을 명심하고 누구에게든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한 해였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일 년 전의 일들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냐는 듯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 2학기에 또 대학병원 진료를 간다. 아침부터 가야 붐비는 것도 덜하다. 초음파, CT 검사도 있어서 일주일 사이로 두 번에 걸쳐 병원에 가야 한다. 다시는 작년과 같은 일을 겪지 않을 것이다.


아프고 난 후 나의 학교생활은 아프기 전의 나의 학교생활과 다르다. 겉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들이 내 교실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신나게 놀 수 있도록 경계를 세워주는 일을 하는 것은 같다. 달라진 건 내 마음가짐이다. 작년을 지나오면서 배우게 된 것은 동료와 관리자에 대한 마음가짐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치님이 하신 말씀, "정 선생님은 왜 이렇게 눈치를 보세요?"을 가끔씩 생각한다. '나 아직 눈치 보고 있나?'

이 질문을 이정표 삼아 행동한다. 그동안 내가 다 감수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려고 했었기에 그 누구보다 인정욕구가 뛰어난 나였기에 눈치를 참 많이 봤다.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좋다고 평가받고 싶었다.


지금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봐주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려고 한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은 나의 가치관과 철학에서 나온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올바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내 안에 있는 선함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 모두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가벼워진다. 누구에게 인정받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그것들을 천천히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는 지금이 참 좋다.


예전에는 마음이 앞서 먼저 도와주다가 오히려 상처를 받았다. 요즘은 마음이 앞서도 조금 기다린다. 상대가 원하는 도움인지를 살펴본다. 학생과 학부모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분명 도와주면 좋겠지만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내 도움은 오히려 독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독이 되는 게 아니라 나에게 독이 된다. 


도움을 주고 싶다면 기다리고 천천히 스며들듯 도움을 주어야 한다. 도움은 필요할 때, 간절할 때 상대가 감당할 크기로 주는 게 제일 좋다. 그것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모두 다르니 그 강약의 조절은 감으로 한다. 스스로 조절해 봐야 한다. 직감의 영역이라 이것 또한 나 자신을 잘 알 때 가능하다. 결국 제일 기본은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괜찮은 상태에서 하는 게 제일이다.


월요일 개학을 위해 오늘을 단정히 보낸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정리를 한다. 오후에는 탁구를 치며 운동도 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학생들과 함께 분주하지만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2학기를 또 설렘으로 시작한다. 뭘 하며 신나게 시간을 채울지 기대된다.


시작하고 멈추고 또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학교의 시간이 나에게 참 어울린다. 그 어울림을 잘 간직하며 살다 잘 마무리하고 싶다. 그게 언제든. 자연처럼 때가 되면 다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난 자연의 성실을 따라가며 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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