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글쓰기
며칠 전 탁구를 복식으로 치다가 파트너랑 부딪치는 바람에 안경이 틀어졌다. 다행히 이전 안경을 수리해서 온전한 모습으로 가지고 있었기에 생활하는데 지장은 없었다. 안경은 다시 수리해서 사용하면 되는 일이기에. 덕분에 오랜만에 안경점에 다녀왔다. 안경을 수리하러 안경점에 다녀오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해 본다.
내가 다니는 안경점은 내가 이곳에 이사 오고 나서 안경을 처음 맞춘 곳이다. 이 안경점을 찾을 때 근처의 안경점을 몇 곳을 다녔다. 안경을 맞추러 가서 안경사에게 신뢰감이 생기는지를 많이 고려했다. 처음 안경점을 찾았을 때 안경사의 첫인상과 지금의 모습은 크게 달라짐이 없다. 내가 좋게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안경사는 언제나 성심성의껏 상담을 해주고 성실하고 언제나 차분한 모습으로 세심하게 대해준다. 7년이 되는 시간 동안 다른 안경점은 가지 않고 이 안경점만 가는 이유는 오직 이 안경사님 때문이다. 다초점 렌즈처럼 비싼 안경을 해야 할 때도 가격에 대한 부담은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안경사에 대한 신뢰 덕분이다.
또 작년부터 다닌 피부과에서 스킨케어 관련 상품을 선택할 때 한 매니저님과 상담을 하고 진행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횟수를 거듭하다 보니 피부과 매니저님과도 신뢰가 형성이 되었다. 피부과에 갔을 때, 이번 달 행사하는 상품을 지난번에 결제했는데 다음 달 행사로 같은 것은 아니지만 싸게 나온 것이 있어서 마음에 걸린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두 상품의 차이를 설명해 주셨다. 오히려 사실대로 말씀을 해주시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게 하고 고객에게 선택하게 하는 부분이 참 감사했다.
돈을 주고받는 관계에서만 신뢰감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돈을 직접적으로 주지 않아도 내가 누리는 공간, 환경, 그 외의 모든 것들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들에게 무한 신뢰감을 느낀다. 근무하는 학교의 청소 여사님은 정말 성실하게 일을 하신다. 아침 일찍 등교하셔서 배움터 지킴이 선생님과 믹스 커피 한잔하시고 일을 시작하신다. 언제나 밝게 웃으시며 학교 모든 곳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셔서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학교의 맥가이버 주무관님은 교실의 시설 문제로 연락드리면 바로 오셔서 아주 말끔하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가신다. 우리 학교 영양사님은 언제나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학생들과 교사를 맞이하고 맛있는 음식을 기분 좋게 나눠주신다. 급식시간은 나와 학생들의 최고의 힐링 시간이다. 나는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무한 신뢰를 느낀다.
교실의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에 대한 교권침해, 무분별한 아동학대 고소가 일상이 되어가는 현실 속에서도 각 교실에는 학생들을 애정으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훈육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어도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고민하는 교사들이 더 많다. 하지만 언론이 주목하고 교육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이상한 교사'이다. 그들의 '라테 시절 교사'의 모습으로 현재의 애쓰는 교사들을 모두 묶어서 곡해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상식에 어긋난 교사도 있을 수 있다. 이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있는 상식에 어긋난 사람의 비율로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어느 집단이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이 교사 전체가 아니고 교사 전체를 대표하지도 못한다. 여전히 소리 없이 묵묵히 자신의 교실을 지키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람을 느끼는 보통의 교사들이 더 많다.
2학기가 되어서 고등학생 아이의 상담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신데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여학생 중 몇 명이 국어교사가 되겠다고 한다는 말을 아이에게서 들었다. 아이에 대한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의 진심이 느껴져서 너무 감사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서 이런 선생님들이 여전히 많이 계셔서 다행이면서도 선생님들이 상처받지 않고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도 최근 학생들의 문제로 보호자들과 상담을 몇 번 했다. 상담을 했을 때 '나의 진심을 보호자는 느꼈을까?' 생각해 본다. 보호자마다 느끼는 게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다르게 상담을 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보호자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의 문제를 알게 되어 고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보호자에게는 다행이고 감사한 상담이었겠지만 그렇지 않게 생각한다면 교사가 내 아이를 싫어하는 건가 하는 의심의 씨앗을 주는 상담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학생에게 일어난 문제를 축소할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으니 연락은 해야 한다. 상담은 원하는 정도에 맞추어 진솔하게 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거기에 내 의견을 더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담백한 상담으로 진행하되 보호자가 학생을 잘 지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클 때는 조금 더 세부적인 상담을 한다. 교사인 내가 일방적으로 학부모를 가르치듯 상담하지 않는다. 지금도 상담을 해주고 싶은 학생들과 학부모는 몇 명이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아채게 된 것은 학교생활을 잘하는 학생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으니 상담을 할 필요가 없고,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는 학생은 상담을 해도 보호자가 싫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상담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이다. 이러니 교사에게 신뢰를 느끼는 사람들이 더 줄어드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독백 중 이런 말을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거,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 없는 바둑
그래도 바둑, 세상과 상관없이
그래도 나에게는 전부인 바둑
왜 이렇게 처절하게 치열하게 바둑을 두십니까.
바둑일 뿐인데.
그래도 바둑이니까. 내 바둑이니까.
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드라마 [미생]
보호자들이 교사에게 신뢰를 느끼든 신뢰를 느끼지 않든 나는 나의 진심을 담아 교육에 임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공교육 교사, 교육의 목적이 스카이로 모아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평가 자체가 아무 힘도 없는 초등교사, 돈도 못 버는 300만 원 임금을 받는 교사, 늘봄이라는 명분으로 교육이 아닌 돌봄이 주가 되게 만드는 현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교육현장을 우울하게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만의 희망이 있어야 한다. 내 안에 나의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그것을 잘 가르치는 교사로 살아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열심이 아니라 내가 교사로서 떳떳하게 살기 위한 정직한 성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누군가의 인정보다는 교사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야 덜 상처받는다. 학생과 보호자의 잘못을 교사의 잘못으로 왜곡해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물과 공기처럼 흔해서 가치 없는 것들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없이는 인간은 단 하루도 살지 못한다. 나는 공교육도 너무 흔해서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공교육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고 깨닫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일이 진행되고 난 이후이니 늦다. 무엇이든 가치를 알고 지켜나가는 것은 아는 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더 많이 알아봐 주어야 하는 것이고. 공교육도 지키자고 소리 높여 말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 같다.
아직까지 나에게 교사는 삶의 전부인 바둑이다. 그래도 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내가 주인으로 살아내야 한다.
그래봤자 교사, 그래도 교사
학교에서 바르게 가르치는 것
그래봤자, 세상에 아무 영향도 못 주는 교사
그래도 교사, 세상과 상관없이
그래도 나에게는 전부인 교사
왜 이렇게 처절하게 치열하게 가르치는 것입니까.
교사일 뿐인데.
그래도 교사니까. 내 삶이니까.
내 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
드라마 [미생]을 바꿔 쓰기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