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글쓰기
요 며칠 날씨가 너무 좋아서 파란 하늘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다. 10년 전 함께 했던 동학년 부장이었던 이 친구, 나보다 한 살이 적지만 너무나 일도 잘하고 모든 것을 열정적으로 하는 이 친구 덕분에 내가 그 시기에 참 잘 여물며 보냈다.
어제 퇴근길에도 생각이 나서 카톡을 보냈다.
"00아, 잘 지내? 문득 생각나서 연락해."
"ㅎㅎㅎ 차나 마시며 산책이나 하자. 너 시간 될 때."
이렇게 보내고 10여 분이 지나서 카톡이 왔다.
"오늘 어때?"
이렇게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서 걷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이 친구와의 대화는 너무 즐겁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다. 교사로서 현실을 살아가는 속 이야기마저 다 할 수 있어서 좋다. 친구와 대화하다가 교감선생님과 많이 친해져서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끼는 동생의 남편인 교감선생님과 이 친구가 친해졌다니 너무 기뻤다. '아, 다행이다.'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어서 너무 고마웠다.
교직도 일반 직장과 다르지 않아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많이 아프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이고 느끼고 있다. 그래서 학교 내에서는 적당한 거리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직장은 직장이기에, 너무 많은 기대는 실망으로 이어지기에. 어느 순간 알아보게 되는 보석 같은 사람들이 간혹 있어서 그때는 참지 않는다. 그와의 만남을 무척 반가워한다는 것을.
이 친구는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 창의적인 생각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다. 업무추진력도 있어서 일을 함에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유능한 교사도 몇몇의 힘든 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학급의 담임으로 역할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시간을 잘 지나갈 수 있을까 이야기를 했다. 동학년끼리의 대화는 예전만큼 큰 위로와 힘이 되지 않음을 서로 인정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이야기가 아니면 겉으로 맴돌다 가는 대화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느 순간 나의 무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은 그의 무능이 아니라 학생을 존중하기에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고 지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해서 시도하고 실패하는 일이 연속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흔들리게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려놓으려고 해도 내려놓아지지 않는 나의 미련함에도 화가 나기도 하니까 어찌 안 흔들릴까 싶다.
말은 'AI처럼 교사해야 살아남지' 말은 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조금 더 넉넉한 품으로 안을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안으며 덜 흔들리기를 언제나 바란다.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하는 교사가 내 곁에 있어서 좋고 나와 함께 길을 걸으니 힘이 난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고민을 기꺼이 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과 고유성으로 자리 잡을 테니까. 잘 살고 또 만나자.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