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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교사 정쌤 Oct 27. 2024

사춘기 아이의 자유의지

치유와 성장을 위한 글쓰기

 한글날 아침, 휴일답게 늦은 아침을 시작했다. 사실 휴일이어도 습관이 되어 6시면 눈이 떠진다. 오늘도 6시 정도에 눈이 떠져서 일어났다가 다시 잠을 청했다. 당분간 없을 평일 휴일이니 늦잠을 자며 좀 더 누리고 싶었다. 잠을 더 자다가 설거지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남편은 출장을 가서 없던 터라 큰아이가 설거지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일어났다. 그 마음이 기특하고 고마워서 다 할 때까지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어쩌다 하는 설거지이니 아이가 스스로 그 일을 할 때는 기꺼이 그 시간을 감사해하며 누린다. 고등학생 아이가 설거지를 하는 일이 감사한 일이지 내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기에 '내버려 둬라'하며 내가 그 설거지를 할 마음은 없다. 아이의 자유의지를 존중한다. 


 아이의 자유의지 존중, 말은 좋은데 부모로서는 그 자유의지를 보는 게 참 쉽지 않다. 성실한 아이가 어느 순간 자신의 동굴을 파고 들어가서는 잘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자아정체성을 갖기 위한 태풍이 계속 휘몰아치는 중인듯하다. 엄마인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결국 기다리기, 가볍게 따뜻하게 대해주기, 맛있는 것 많이 사주거나 해주기, 일상을 가볍게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안을 따뜻하게 만들기와 같은 것들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생각해 보면 나도 중고등학생 때 부모님이 모르는 내 내면에서 얼마나 많은 싸움을 했었던가 싶다. 그때는 힘든 가정환경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외부의 환경이 다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나와의 싸움이 어쩌면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나처럼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단짝 친구가 한 명만 있길 바랐고 친구들과 함께 했어도 언제나 외로웠다. 


 큰아이를 보면 그랬던 내 내면의 아이가 생각난다. 그때의 나와는 다른 고민이겠지만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이 스스로 자기 안에서 치르는 싸움에서 언제나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길 수는 없다. 어느 날은 이기고 어느 날은 진다. 어느 날은 내가 마음에 들고 어느 날은 내가 너무 싫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왔다갔다하고 감정에 치우치는 내가 더 싫어지는 날도 있다. 엄마인 내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이가 자신에게 지더라도 무너지지 않도록 따뜻한 말과 표정으로 아이를 지지해 주는 것뿐이다. 살다 보면 무수히 넘어지며 가는 길에 네가 지금 진 싸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저 작은 돌부리, 그러니 툴툴 털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가끔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때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하는 말은 분명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너야. 너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사람은 너라는 것을 잊지 마'이다. 스스로가 수없이 많이 넘어지고 세상에 지더라도 한숨 자고 일어나면 툴툴 털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오늘 아침, 큰 아이의 설거지는 나에게 그렇게 들렸다. '아빠도 출장 가시고 안 계시는데 엄마가 일하고 와서 나와 동생을 돌보느라 설거지도 못하고 주무셨네. 많이 피곤하셨으니 아침 먹기 전에 설거지라도 해야지' 하는 아이의 마음. 아이도 나를 응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 내가 지금 나와의 싸움 중에 많이 힘들어서 좋은 결과를 못 내지만 엄마가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엄마가 애쓰고 있다는 걸 나도 알아요'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저 아이가 설거지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이도 나도 조금씩 서로의 마음을 살피면서 서로를 인정하며 커가고 있다. 엄마의 사랑이 너무 커서 아이가 숨 막히지 않도록 조심조심 아이에게 적당한 사랑의 정도를 맞추고 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수많은 날들이 날마다 맑은 날은 아니지만 분명 맑은 날이 더 많다는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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