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민 작가의 [나는 복어]를 읽었다. 청소년 문학소설이지만 나이 든 내가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청산가리'라는 별명을 가진 특성화고등학생 '김두현' 학생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현실에서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큰 아픔을 별명으로 달고 사는 주인공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소설을 한달음에 읽었다.
다행히 주인공에게는 주인공을 사랑으로 돌봐주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셔서 심리치료도 받으면서 자랐다. 상담을 받은 덕분에 주인공은 화가 나거나 마음이 힘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친구 준수가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 한 명, 한 명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신의 아픈 상처를 잘 다독여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가끔 세상의 벽에 부딪쳐 상처가 더 커져서 무너져내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조금씩 알아봐 주면서, 각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응원한다. '널 응원해' 하는 말이 없어도 그저 별명 하나 부르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두현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 스스로 투지를 갖는 모습을 보며 희망을 떠올려본다.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있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고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별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두현은 스스로의 등불을 밝혔다.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해주는 글이 참 고맙다. 그리고 어느 하나 애틋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서 더 고마운 글이었다.
무엇을 하든 기대하는 것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일터에서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두어 명은 있었으면 했다. 억지로 근무 시간을 채우기보다는 내 몫을 확실히 할 수 있으면 했다. 이것이 나의 욕심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건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하나 더 더하자면 세상을 밝히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나는 육교 위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도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부풀도록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복어의 독처럼 마음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듯했다.
한번 깨졌던 내 영혼은 정밀하게 깎아 낸 금형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말끔했다. 마음의 표면에 신선하고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일렁이는 이 마음에 무슨 이름을 붙일까 생각하는데, 불현듯 투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복어]- 문경민 지음, 문학동네
어린 시절 어느 때인가부터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 생각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났던 담임 선생님이었다.
...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살고, 다 같이 잘 살면 그게 좋은 거다.
... 책이, 문학이, 소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있다, 없다로 답해야 할 질문이지만 나의 대답은 믿음이다. 믿든지, 믿지 않든지, 반만 믿든지, 아니면 상관하지 않든지. 나는 믿는 쪽을 선택했고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
[나는 복어] 역시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특성화고등학교 역시 인문계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천차만별이었고 그 안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잊혀 가는 사건들을 생각하면 서글프고 화가 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복어]- 문경민 지음, 문학동네 - 작가의 말 중에서
문경민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나도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해 주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쉽지만 좋은 말, 가슴에 콕 박혀서 오래도록 아이가 까먹지 않을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