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프지니>님의 글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본 적이 있는지? 나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다. ‘재미로 읽는 책 읽기’를 하는 나였기에 내용을 뻔히 아는 책을 다시 읽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키의 수필집인 이 책은 재독을 한 나의 첫 번째 책이다. 지금도 왠지 모르게 힘이 부칠 때 찾게 되는, ‘위로와 응원’이 함께 하는 책.
이 책을 검색창에 입력해 보니 제목과 함께 [세계적 작가 하루키의 달리기를 축으로 한 문학과 인생의 회고록]이라는 부제가 따라온다. 이런 부재는 없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이 문구가 이 책을 한 줄로 설명한 가장 최선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은 굳이 드러내려고 애쓰지 않아도, 작가의 가치관이 작품에 묻어 나온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하루키의 삶에는 ‘달리기’라는 묵직한 축이 있었던 거다. 소설가와 달리기! 꽤나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울리지 않는 두 축이지만 가장 묵직하게 하루키의 삶을 지탱하게 된 이 상관관계가 아주 매력적이었다.
p.126 나 자신에 관해 말한다면,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휴양이 정당하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만약 내가 소설가가 되었을 때 작정하고 장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쓰고 있는 작품은 전에 내가 쓴 작품과는 적지 않게 다른 작품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무엇인가가 크게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은 확실히 든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일종의 취미가 내 삶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이다. 그럴 것이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학창 시절, 학기초면 고민하게 만들던 취미, 특기란! 의미 없는 빈칸 채우기라고 생각했던 공란. 그러나 이것이 삶을 대하는 자세와 이토록이나 맞물려 있을 수 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아가나 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나도 한창 달리기에 빠져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남편은 몇 달째 해외출장 중이었고, 아이들 등교도 정상적이지 않았던 때. 지쳐있던 내게 가장 큰 활력이 달리기였다. 무기력인가 싶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달리기만은 빠지지 않았고, 한참을 책을 놓고 있다가 다시 찾은 게 하루키의 이 책이었다. 내게는 그저 위로이자 활력이 되어준 취미 달리기가 하루키에게는 소설가로서의 목표, 인생의 큰 축이 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좋아하는 것을 가볍게 하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졌다.
몇 년이 지나 이 책에 대한 독서 기록을 다시 읽으며, 많은 사람에게 취미가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겠구나 싶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부터도 글을 쓰고 있으니까. 나의 글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좋아서 읽을 책 읽기가 글쓰기로 이어지며 나는 이미 행복감을 느끼니 지금도 충분하다.
사실 이 책은 20대 때 읽은 하루키의 책을 통해 가지게 된 그의 이미지를 완전히 깨 주었다.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을 읽으며 감각적이지만 뭔가 몽환적인 느낌이 강해 사실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별로 일지 않았고, 달리기를 하며 ‘쇠퇴해 있을 겨를이 없게’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p.152 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 간다.
빠르건 늦건 패배하고 소멸한다. 육체가 시들면 (우선 아마도)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그와 같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 - 결국 내 활력이 독소에 패배해서 뒤처지고 마는 지점-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소설가로서 내가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지금의 나에게는 '쇠퇴해 있을' 겨를이 없다. 그러니만큼 '저런 자는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누가 말한다 해도 나는 계속 달린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쇠퇴해 있을 겨를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쓰는 소설가. 이를 위해 아침마다 달리는 사람. 직업인으로서, 생활을 영위하는 자로서 너무나 심플하고 명료한 목표다. 그리고 아는 자만이, 깨달은 자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