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댕맘>님의 글
우물 안의 집단 교사
내가 처음 발령받았을 땐 학교에 외부인 출입이 자유로운 시기였었다. 그 당시 사회 초년생인 내게 학부모와 교장선생님 다음으로 무서운 사람이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와 영업하는 방문 판매자들이었다. 카드와 보험설계사는 돈이 없다 이미 카드가 있다는 궁색한 핑계로 물리쳤으나 풀0원 아주머님의 한번 잡솨봐 스킬에는 여지없이 당하고 말았다. 거기다 몸이 불편하시거나 고령의 할머니가 오시는 날엔 내 지갑은 탈탈 털리기 일쑤였다. 선배 선생님들로부터 교사가 제일 세상 물정 모른다 어수룩해서 사기 잘 당한다며 일침을 당하였다. 게다가 학창 시절엔 나름 미적분과 확률통계를 제일 좋아하던 이과형 두뇌를 가졌다고 자부했는데... 월급 명세서는 들여다보기 싫은 성적표 같고 세세하게 따지면 쪼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학교는 보통의 직장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 매일 마주하는 직장 동료가 우리 반 아이들이다. 내가 맡은 학년에 따라 수준차이도 어마어마 하지만 기본적으로 초등학생이다 보니 아이들의 생활 지식은 나의 지식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리고 하는 일이 아이들 교육과 관련되다 보니 세상 트렌드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아도 잘 생활할 수 있다. 교육현장은 그만큼 변화가 더디게 오는 곳이다 보니 우물 안에 갇힌 어른아이 같은 선생님으로 머물러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독서가 열어준 새로운 세상
그러다 첫 독서모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같은 교사임에도 선생님들의 독서량은 어마어마했고, 읽는 분야 또한 자기 계발서, 투자서, 교육서 등 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동안 열심히 읽었던 학급 경영 책과 육아서로 나름 독서 애호가라 생각했는데 얼마나 나의 편독이 심했는지 여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의 독서는 좋아하는 것을 읽거나(소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베스트셀러)을 따라 읽거나 그것도 아니면 지극히 필요에 의한 독서(육아서)를 해왔었다. 그저 그런 독서를 해오던 내게 그냥 하지 말라는 그야말로 도끼 같은 책이었다. (나름 책을 읽었건만 카프카가 책은 도끼라고 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나의 생각과 편협한 시각을 깨어주는 신선함에 매료되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캐는 광부’ 책갈피에 적힌 송영길 작가에 대한 첫 설명 문구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보통의 저자 약력과는 달리 자신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문구가 눈길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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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그냥 하지 말라 19쪽)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균등하게 온 것은 아니다(윌리엄 깁슨, 15쪽)
시대의 변화는 거대한 파도와 같아서 거스를 수가 없다. 한창 코로나의 고비를 건너가는 시기에 읽었던 터라 더욱 뼈저리게 읽힌 문장이었다. 모두에게 균등하지 않은 정보의 불공평성을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비대칭인 정보의 균형도 문제지만 과연 믿을만한 정보인가라는 정보의 신뢰성도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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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먼저 생각하고, 그다음에 충실히 해야 합니다. 그냥 해보고 나서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하고 나서 검증하지 말고, 생각을 머저하세요.(84쪽)
소위말하는 팩트 폭행을 당했다. 퇴근 후 숏츠와 영상물에 휩싸여 하루의 피곤을 풀고, 핫딜에 이끌여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구매한다. 시발비용이라는 말처럼 생각 없이 소비하고 삶을 영위하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사는지 책을 읽기 전엔 나를 돌이켜볼 여유도 없었다. 변화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순간 시작되어 어느새 나의 주변 일상이 되어간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것을 보는 눈을 기르지 않으면 그냥 따라가고 순응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눈 위에 얇게 씐 막이 벗겨지고 새로운 빛을 본 기분이었다. 변화와 적응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성장임을 저자는 마지막장에 이르러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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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현행화 노력에 데이터 기반 사고, 이성적 사고, 과정의 충실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둔 ‘작은 성공’을 기억한다면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서 더 현명해지기 위한 시도를 과감히 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182쪽)
우리의 이슈는 대체가능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220쪽)
팔로워가 아닌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체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엔데믹으로 코로나는 한풀 꺾인 것 같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아주 빠르게 변화된 사회로 넘어왔다. 비대면과 AI의 성장으로 인해 계층 간의 분열이 더욱 심해졌으며 시장의 변화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많이 변화되었다. 여전히 SNS로 허울뿐인 모습을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속에서 자기 본연의 색깔을 찾고 진정성 있는 자아로 나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시대의 흐름을 읽다 보니 외부에 대한 질문이 내부로 이어진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디서 내 삶의 진정성을 채워야 할 것인가? 혼자서는 막막하기에 오늘도 독서 모임에 가고, 책을 편다. 두려움을 떨지고 퍼스트 무버로 나아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