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댕맘>님의 글
읽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은 기적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지만 지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운명이었던 것 같다. 내 독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첫 책의 바다에서 뛰어놀았던 건 2학년 아빠가 처음으로 사주신 전집 1질에서였다. 별로 넉넉하지 않은 집의 둘째들은 숙명적으로 새 물건에 집착한다. 그것도 나의 것이라고 명명된 물건은 열과 성을 다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나 홀로 시작되었던 책 읽기가 중고등 사춘기의 예민한 감수성을 건드려 문학소녀로 남았다면 내 미래가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결국엔 이도 저도 아닌 읽는 듯 아닌 듯 어중간한 위치의 독서애호가와 책 임보가 어디쯤을 헤매었던 것 같다. 혼자서 이 책 저책 기웃거리다가 어떤 때엔 흠뻑 빠져 책에서 헤어나질 못하기도 하고, 또 다른 때엔 책 밖을 겉돌기만 했다. 도서관에 가면 가득 꽂혀 있는 책이 반갑기도 했지만 막막하게 느껴져 무섭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놓기도 여러 번이었고 어느새 읽는 것도 안 읽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의 내가 있었다.
어디에나 소속되고 싶고, 누구와도 만나자마자 넉살 좋게 이야기하는 성격의 나이지만 그저 그런 대화의 끝엔 공허함과 허무함이 남았다. 만나는 사람들과 어제 본 예능 프로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서는 갑자기 불쑥 ‘그 책 읽어봤어?’ ‘어땠어?’라고 묻고 싶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갈증들이 쌓여서였을까? 글쓰기 멤버를 모집한다는 글에 덜컥 댓글을 달고, 또 거기서 파생된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의 모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냥 모르는 사람들이 오롯이 책으로만 만난 것은 아니었다. 독서모임 전에 글쓰기 모임이 있었고 그전에 교사이자 엄마이자 한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닮은 점이 많아서인지 모임의 시작엔 항상 서로의 근황과 안부를 묻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도 실제 만난 적은 없는 오롯이 화상 채팅으로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지만 독서모임에서 얻는 위안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지인이 주는 위안보다 크게 느껴졌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새벽 6시에 만나는 모임이기에 개인 일정과 겹치거나 책을 좀 덜 읽은 날에는 꾀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번 빠지고 나면 내 마음이 불편하다. 그달의 책을 많이 읽었든 적게 읽었든 하고 싶은 말이 생기고 다른 이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그만큼 내게는 중요한 일정처럼 자리 잡았다. 가족 여행을 가서도, 책 한 줄 못 읽은 날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함께 하지 못했더라면 알지 못했을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이다.
첫 시작
첫 시작은 그냥 하지 말라는 송길영 작가의 책이었다. 지금도 이 책을 읽었던 당시의 기분을 생생히 기억한다. 독서 모임 전의 내 독서는 그야말로 편식이었다. 두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들이 커가는 것이 무서워 육아서만 찾아서 읽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지만 점점 육아서와 나를 비교하고 왜 나는 책 속의 좋은 엄마가 못 되는지 한탄하는 날이 늘었었다. 책을 통해 변화하는 것이 아닌 책과 나를 비교하며 자존감을 깎아먹는 책 읽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는지,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집- 학교- 육아에 갇혀 살았다.
그러다 독서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읽은 ‘그냥 하지 말라’는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좋아하는 것이나 남들이 좋다는 것만 기웃거리는 독서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변화하는 사회에서 남들 따라 그냥 하는 것이 아닌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저자의 일침이 우물 안에 갇혀 있던 내게 자극제가 되었다. 이렇게 안주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보던 것만 보고 하던 것만 하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생각보다는 익숙한 생각에 빠져 그냥저냥 살게 되는 것이라고, 그러다 변화를 눈치채면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는 그것이 곧 위기가 될 것이라 말하는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행동했던 순간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몰랐던 책들이 이렇게나 많고, 세상은 이렇게나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예언서라도 만난 것처럼 대구로 내려가는 KTX안에서 홀로 기쁨에 전율했던 순간이었다.
이름도 낯선 빅데이터 전문가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의 글은 트렌드를 분석해 주고 현 상황을 바라보는 해설을 달아주었다. 바닷가에서 예쁜 조약돌을 줍는 아이처럼 신이 나 이 문장, 저 문장을 주워 담았다. 단순히 읽는 것에서 끝났던 독서가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여러 번 되뇌며 나의 생각과 결합시켜 보게 되었다. 내 생활에서 바뀔 것은 무엇인지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신나 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2시간이라는 시간이 부족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로운 책을 가져다 놓게 되었다. 혼자라면 절대 읽지 않을 그러나 읽어보면 좋은 소위 말하는 벽돌책도 읽고, 고전과 인문학을 아우르며 트렌드를 읊어주는 책들도 살펴보았다. 2년이라는 시간 총 23번의 만남으로 우리는 함께 성장했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진정한 책 읽기란 그냥 읽어 치워 버리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나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임을 독서 모임을 통해 배웠다.
앞으로의 계획
가볍게 시작했던 책 모임이 어느새 내일상에서 중요한 위치가 되었다.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너무도 달라져서 이제는 여가시간에 책 읽는 것에서 나아가 생활을 변화시키는 독서를 하고 있다. 읽고 나면 끝이 아닌 내 삶에 적용해 보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그런 책 읽기를 하고 있다. 헌책에서 함께 읽는 책모임으로 더욱 넓고 깊어진 나의 독서 생활 후반부가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