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학급을 맡아서 처음으로 한 해 마무리를 끝까지 못했다. 큰 아이 임신을 했을 때도 출산휴가를 보내고 학교에 나가 학급 아이들과 한 해를 마무리했는데 그 해는 그랬다. 교사에게 생길 수 있는 교통사고와 같은 순간들이 있다. 수많은 우연이 겹겹이 쌓이면서 내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나씩 생기는 일들로 어느 순간 불안과 두려움이 너무 커져 병을 얻고 말았다. 그때는 내가 나약해서 병을 얻었나 하는 생각도 했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계속 물었보았다. '나는 나약했나?' '아니.' 최근에서야 더 확실하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겨울 두통으로 아파서 다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하면서 깨달았다. 그 당시 내가 정말 아팠다는 것을. 지난겨울 두통으로 아프고 힘들어도 화가 나고 분노할지언정 두려움에 숨이 막히지는 않다.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봐 학교 근처나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는 게 두려웠다. 이성적으로 생각조차 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 해에는 아파서 쉬면서 날마다 '내가 이렇게 했으면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다. 참 많이 울며 보낸 시간이었다.
날마다 자책하면서도 날마다 괜찮아를 수없이 말하며 봄을 버텼다. 그 해 여름, 건강검진을 하고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얼마 뒤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제가 죄책감에 너무 힘들어하니 암을 선물로 주신 것 같아요. 오히려 암이라고 하니 죄책감이 사라질 것 같아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병가, 병휴직 기간 내내 학급 아이들을 마지막까지 못 가르치고 나왔다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아니야. 그때 나는 두려움이 너무 커져서 이성적으로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 하며 나를 달랬지만 그것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자책할 이유가 사라졌다. 암에 걸리고 나서야 나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 일이었구나.', '내가 한 해를 다 가르치지 못할 인연이었구나.' 그렇게 받아들였기에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교사들에게 교통사고와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교통사고의 정도에 따라 통원치료를 하거나 입원치료를 하거나, 수술을 하여 치료하기도 한다. 교통사고의 정도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생기는 교사들의 교통사고와 같은 순간들도 그렇다. 며칠 마음 아프고 지내면 되는 것, 병가를 쓰고 치료를 받으며 되는 것, 더 나아가서는 병휴직까지 써서 그 해를 꼬박 쉬어야 낫게 되는 것 등, 이것 또한 교사가 받은 피해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 쉬어야 하는지 그 기간을 알 수 있다.
교통사고를 여러 번 당하는 사람도 있고 한 번도 당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나는 사고도 경험하는 수가 모두 다양하다. 누구나 처음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모든 게 무너지는 것 같다.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대부분의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하고 나왔다는 죄책감, 한 해를 마무리 못해주었다는 미안함, 나는 왜 이 정도도 못 참고 이렇게 아픈가에 대한 자책감, 내 능력에 대한 자괴감. 수없이 나를 짓눌렀다. 2006년 발령받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쉬어야 할 정도로 아픈 적은 없었다. 2018년 6학년 학생들을 가르칠 때 병원에 2번이나 입원하면서도 학교를 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쉬고 나면서 나는 너무 아팠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지 못할 까봐 두려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암을 진단받고 나서 나는 마음의 짐을 벗은 듯 후련해졌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보험사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본다. 그런 절차처럼 교사들도 학급 내 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그리고 관리자의 대처가 미흡하다면 노조에 문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도움을 받아 그 일이 잘 해결되어도 제일 중요한 것은 교사 본인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는 것이다. 겉은 멀쩡해도 내상이 아주 깊게 생긴다. 한 번 생긴 내상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병원치료와 함께 내상을 잘 치료하기 위해 내가 한 일은 일기 쓰기다. 그냥 일기 쓰기라기보다는 나를 위한 글쓰기, 저널테라피, 저널링, 표현하는 글쓰기다. 어떤 면에서는 감정일기라고 할 수도 있다.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페이지처럼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토해내듯 썼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걸러내지 않고 모두 토해냈다. 그렇게 쓰고 또 쓰고 또 썼다. 그리고 걷고 또 걸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시간을 많이 걸었다. 눈물이 날 때는 울고 힘들 때는 토해내듯 글을 썼다. 누굴 위한 글이 아닌 내 안에 있는 울분을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치유가 되었다. 하지만 교사의 삶에서 그것이 완치되려면 필요한 것이 있다. 학생들의 믿음과 사랑이다. 학생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내가 교사로서 서기 위한 자긍심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다 괜찮다고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의 충만함이 나를 가장 많이 치유한다. 나를 단단하게 세워주고 뿌리내리게 한다. 이것 또한 복직하고 한 해를 다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교사로 지내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온전한 지지가 필요하다. 그것으로 내상의 상처가 완전히 아문다. 그리고 교사 본인도 자신을 믿게 된다. 지금 학교, 학급 내 문제로 아픈 선생님들께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글쓰기를 해 보길 적극 추천한다. 쉽게는 일기라고 생각해도 되지만 조금 더 들어간다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이다. 내 마음에 가장 걸리고 있는 그것을 직면하고 글을 써 보길 바란다. 너무 힘들어서 그것을 꺼내는 것조차 힘이 들 때는 가볍게 산책하며 햇살을 많이 쬐길 바란다. 또한 꼭 병원 치료를 함께 병행하길 바란다. 지금 내 앞의 문제라서 너무 커 보이겠지만 인생 전체를 두고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중한 것은 나와 나의 가정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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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선생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은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