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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힘을 믿으며, 교사의 자리에서

by 쓰는교사 정쌤


블로그에 1년 전 글이 떠서 읽어보았다. 학급 학생들을 가르칠 때,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나에게 집중하고 나에게 좋은 피드백을 보내는 학생들을 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작년에 개성이 강하고 다양한 학생들이 많은 반을 맡았던 터라 3월부터 에너지 조절이 조금 힘들었다. 아이들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게 분포한 반이었다는 것을 새 학기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었다.


자식도 아롱이다롱이 다른데 학생들이야 더 다양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내가 올해 이종대왕의 단단 학급경영 연수를 듣고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의 나의 학급경영을 재정비하고 있다. 열심히 지도하고 학생들을 존중하고 잘 지도한다고 생각했으나 항상 에너지가 달리는 구간이 있었고 힘든 시간들이 있었다. 모든 학생들이 안전하고 즐겁게 공부를 해야 하기에 학급의 경계를 세우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교실의 질서가 무너지면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종대왕 샘이 올려주는 단단 멘트를 보면서 내가 교사의 마인드를 넘어 엄마의 마인드가 들어간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조금 더 담백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자라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랄 환경을 구성해 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작년에도 많이 바뀌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다가도 다른 학생들을 생각해 그 시간이 길지 않도록 했다. 또한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으로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 되도록 관점을 바꾸기도 했다. 덕분에 작년에도 많은 것들을 바꾸면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다수의 학생들이 만족스러워했다. 학년을 마무리하면서 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나 스스로도 뿌듯했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느끼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생활지도의 경계가 그런 듯하다. 예전처럼 확고한 경계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만 그 경계가 있음을 알리고 그 경계를 지키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학급의 상향 평준화를 만드는 학급경영, 그것에 중점을 두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내 에너지를 잘 유지하면서 학급의 평화도 유지가 가능하게 되는 것 같다.



신은 어떻게 일하는가

매일 수백만 송이의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항상 기억하라.
신이 조금의 힘도 들이지 않고 그렇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웨인 다이어 지음, 정지현 옮김, 토네이도



가끔씩 생각하는 글이다. 신이 꽃을 피우는 일, 그 일은 어마어마한 일임에도 봄이 되면 많은 식물들이 저마다의 꽃을 피운다. 내가 교사로서, 부모로서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 스스로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을 조금씩 건드려주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라고자 애쓰는 아이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움직여 자란다. 모든 생명은 그렇게 자란다. 그게 생명의 힘이다.


너무 인위적으로 바꾸기 위해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도록 하자. 나 또한 내가 가진 몫을 그렇게 흘러넘치게 하면 된다. 교사로서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기꺼이, 즐겁게 주면 될 것 같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흘러넘친다. 그러니 너무 많은 에너지를 좋지 않은 방향으로 쓰지 말자.


스스로 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살짝 건드려 주면 된다. 추운 겨울에서 봄이 올 때 따뜻한 날씨가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교사의 말과 행동도 따뜻하다면 아이들도 자연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렇지만 예외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생각하며 교실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중점을 두는 것이 서로를 위한 일이다.


우리 모두 자연의 일부이기에, 분명 생명은 스스로 자라려고 애쓰기에 그 에너지를 느낀다면 그렇게 잘 자랄 것이다. 그 믿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아야겠다. 내 자녀들도, 그리고 내 학급의 아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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