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왜 자꾸 글을 써?
넌 왜 그렇게 책을 읽어?
오늘 아침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누군가는 글을 쓰면 무조건 책이라는 결과물이 나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책이 되지 않아도 글은 글로 충분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책이 되어도 좋지만 책이 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하고 싶다.
책이 되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글쓰기, 그것으로 이미 충분한 글쓰기를 말하고 싶다. 물론 이것이 책이 될 수는 있다. 그것은 길을 가다 보니 생긴 결과물이 될 수 있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주 중학교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치고 나서 찾아오는 불안감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괜히 생활지도했나 괜히 더 열심히 가르쳐서 힘들게 했나 하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느끼지 않았으면 모른다. 그 소식을 듣고 내가 책을 더 많이 읽고 글을 쓰게 된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읽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읽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이더니 넘쳐 흘러내리는 순간 쓰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어 쓰게 되었다. 나에게 읽고 쓰는 삶은 살기 위한 것이었다. 읽지 않고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 모습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실패-실패였을까? 나는 그 순간을 무엇으로 정의 내려야 할까? -를 마주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나를 잠재우고 바르게 세운 것이 읽기이고 쓰기였다.
읽고 쓰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읽지 않으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남들이 말하는 대로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들의 해석에 따르면 교직 탈출은 지능 순이니까, 남들의 해석에 따르면 내신 6등급도 오는 교직이니 이제 교사는 별 볼일 없는 직업이라고 하니까, 남들의 해석에 따르면 교사는 학생들을 배려하며 참아야 한다고 하니까, 교사의 멘탈이 약하니까 그렇지라고 하니까... 이런 말들을 곧이곧대로 믿게 된다.
나는 그런 해석들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사에게 우리 사회가 가스라이팅 한 것은 없는지, 너무나 순종적으로 학교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교사가 되어 너무 의심 없이 생활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나서야 그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 그전에는 남들의 해석이 전부인 양 받아들이고 떠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떠나야지 하고 생각하며 내 인생을 되돌아보니 아직은 아니었다. 내가 교사로 첫 발을 내디뎠던 그 순간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조금 더 펼치며 내 인생을 살고 싶었다. 복직하며 그 생각들을 했고 나만의 해석이 더욱 필요했다.
읽고 쓰는 일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돌고 도는 문제와 같을까? 넘치게 읽으면 쓰고 싶고 쓰고 나면 다시 읽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며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지만 그것이 더 확고해지고 명료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글쓰기다. 읽기와 쓰기는 그렇게 나를 괴로운 순간에서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선생님들이 부디 더 이상 자신의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내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교는 선택할 수 있다. 통제 불가능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모든 것이다. 학교에서의 일이, 업무와 관련한 민원들이 나와 내 가정을 해친다면 그때는 학교를 떠날 생각을 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병가를 내고 병 휴직을 내어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가르치는 일의 특성상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면 제대로 가르칠 수가 없다. 내 안에 자긍심 없이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선생님들이 조금 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교권침해나 아동학대고소는 교사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교원노조에 가입해서 꼭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길 바란다. 일이 터지면 학교도 교육청도 교사를 온전히 도와주지 않는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2개 이상의 교원단체에 드는 것을 권장한다.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 사이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지켜줄 단체에 회비를 내고 조합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미 2023년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 후 복직을 하면서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학교는 언제든 관둘 수 있는 곳이다. 다만 떠나는 순간까지 나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 만족하기 위해 현재에 충실하게 살려고 애쓴다. 오늘 만나는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이 즐겁길 바란다. 순간순간 정성스럽게 살려고 노력한다. 항상 잘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정성스럽게 보내려고 노력하니 내 마음이 평온하고 충만함을 느낀다. 어느 날은 마음이 힘들기도 하고 어느 날은 기쁨으로 웃음이 떠나지 않기도 한다. 교실에서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일로 괴롭다면 내려놓을 준비도 날마다 한다.
날마다 정성스럽게 살고 있지만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마주한다. 너무 거창하게 교직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소박하게 내 교실에서 우리 반 아이들과 하루하루 잘 보내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나를 위해서 정성스럽게 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 영혼부터 망가지는 일이 있다면 내려놓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선생님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