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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크 선장의 시계처럼 내 안에 삼켜진 책들

by 쓰는교사 정쌤

후크 선장의 시계를 삼켜 시계 소리를 내며 나타나는 악어처럼 내 안에 삼켜져 언제나 내 안에서 똑딱똑딱 소리를 내어주는 책들이 있다. 그 책을 만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나를 꺼내어 더 뾰족하게 만들어주는 책들이다. 어떤 책은 책의 모든 부분을 삼켰고 어떤 책은 문장하나로 강렬하게 삼켜져 내 안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그것‘을 꺼내보고 싶게 만들어준, 내 세계를 깨고 나오게 만들어준 [데미안], ‘너 자신이 되어라’라는 그 강렬한 말을 남겨준 [여덟 단어], 내 안의 예민함을 발견하게 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모진 비바람에도 튼튼했던 나무가 쓰러진 것은 작은 딱정벌레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로 내 안의 불안이 내 삶을 쓰러뜨릴 수 있음을 알려준 [데일카네기의 자기 관리론].


마크툽 하나로 내게 일어난 모든 시련을 다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 [연금술사], 나와 비슷한 학생들을 돕고 싶은 이유가 어쩌면 내가 유전자 전달자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해 준 [이기적 유전자],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는 ‘행복한 고구마’처럼 살고 싶어지게 한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그 무엇보다 나로 살고 싶은 나에게 그게 옳아라고 말해주었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어떻게 일하며 살 것인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에게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했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말하고 싶을 때마다 꾹 눌러 참게 해 준 [소설처럼].


내 삶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해서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심플하게 산다], 선택과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 [원씽],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그 지질한 상황이 참을 만한 것이라며 계속 팩트폭력을 하는 [시작의 기술], 그리고 나를 책 쓰기의 바다로 안내한 [책 한번 써 봅시다].


내 안에서 삼켜진 문장들은 내가 혼란스럽고 외로울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할 때, 삶이 허무할 때, 부지불식간에 올라온 불안에 사로잡혀 두려움으로 내 마음이 가득 찼을 때, 그 수많은 순간, 시계를 삼킨 악어처럼 똑딱똑딱 소리를 내며 나에게 다가온다. 나 여기 있다고 너에겐 지금 이 문장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떠오른 문장 하나로 그 하루를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루가 힘들 땐 그 순간을 살아갈 힘을 얻어 매 순간을 이어서 살았다. 저마다의 삶이 다르듯 같은 책을 읽어도 각자에게 오는 문장은 모두 다르다. 정답을 찾듯 책을 읽기보다 그냥 나에게 다가온 책들을 읽으며 꿀꺽 삼켜지는 책의 내용들을 바라보며 하루하루의 산을 넘어왔다.


‘이 책을 읽으면 힘들 때 도움이 된대’가 아니라 내 마음이 힘들다면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한 바퀴 둘러보며 내 눈에 들어오는 책을 꺼내 읽어보자. 그리고 거기에서 내 마음을 위로하는 문장이 있다면 그 책을 들고 나오자. 그렇게 만나게 된 책은 꼭꼭 씹어 먹게 된다. 삼켜진 많은 문장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문장들이 어르고 달래며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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