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순간이 있다. 비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느 날은 주위를 둘러본다. 누구는 승진하고, 누구는 이직을 하고, 누구는 집을 사고, 누구는 자식이 잘 되었고, 누구는 재산을 물려받았고... 남들을 바라볼 땐 사람들이 잘 된 것만 바라보니 그 끝은 나는 ‘뭐 하고 있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나는 그동안 뭘 했지?’ 이런 생각들이다.
이런 푸념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 사는 세상이 예전보다 투명해져서 남들의 모습이 너무 잘 보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푸념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살아가네. 각자 자기 삶 살아가는 거지. 나도 내 인생 사는 것이고.'라고 생각하고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야 한다. 내 안에서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가 갈 수 있는 속도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칠환 시인의 시 <새해 첫 기적>에 나오는 구절이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새해 첫 기적> 중
고명환 작가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를 읽으면서 이 시를 처음 접했다. 열심히 하면 다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남들의 속도로 달리려고 했던 것 같다. 아니 남들의 속도를 의식하며 내 속도를 내 역량에 비해 더 내려고 했다. 그랬더니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었다. 몸과 마음의 부침은 병으로 온다. 내 삶에 그렇게 온 암이라는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남들을 의식하며 조금 더 속도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
각자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대로 날아서, 뛰어서, 걸어서, 기어서, 굴러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만의 속도로 가도 우리는 한날한시에 새해 첫날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시를 읽다가 생각해 본다. 삶의 종착지는 결국 죽음이다. 내 속도와 방향으로 충실하게 살아서 삶의 종착지에 이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방향과 속도를 갖기 위해서는 내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할 때 신나는지, 무엇을 할 때 힘든지, 무엇을 참을 수 있는지, 무엇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어하는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어떤 것인지, 내 마음이 무엇을 할 때 가장 평온한지, 죽음을 한 달 앞둔 시한부 인생이라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은지, 죽는 그 순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죽는 수간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 말고 내가 나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시간을 가졌을 때 우리는 내 삶의 속도를 제어하고 방향을 조절할 수 있다. 내 삶의 방향키를 잡고 조금씩 돌린다. 한 번에 돌렸다가는 삶이 전복되고 만다. 물론 삶의 방향키가 내가 아닌 바깥의 영향으로 확 돌려져 전복되어 온전히 바뀌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게 된다. 작은 계기들이 누적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방향으로 내가 조절하는 속도로 나아가게 된다.
어느 날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의 삶도 관망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좇아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지? 나에게는 그 부분이 그리 필요하지 않네. 또는 나는 감정적으로 많이 생각하니 기계적으로 그 부분을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어서 참여해야겠네.' 이런 식으로 나만의 해답을 찾아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 남들이 속도를 높여서 달리고 있다고 무작정 따라가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교직은 많이 힘든 환경이다. 학생들은 많이 어려지고 규칙을 지키는 것을 어려워하고 단체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졌다. 그와 더불어 학부모들의 민원과 교권 침해도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교사를 향해 언성을 높이고 소리를 지르는 학부모도 많아졌다. 교실 속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킨 학생을 제지하다가 학생에게 맞는 교사도 많아졌다. 그로 인해 교직을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떠나는 교사들도 많다.
교사들은 자조적 목소리로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도 한다. 나도 한때는 교직을 빨리 떠나야 하나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열정을 쏟아 일하던 교사들이 학교를 떠나는 것을 보니, '나도 떠나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아하" 말하게 되는 즐거운 순간들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교직에 들어온 첫 순간, 교직에 들어오며 가졌던 첫 마음들이 하나씩 깨어났다.
내 안에 분명히 있었던 그 마음과 그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라는 것을 더 선명하게 느꼈다. 알아차리고 나니 다른 교사들이 떠난다고 내가 함께 떠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좋은 동료들이 교직의 힘듦으로 떠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상처받아 떠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하고 있다.
교원단체 들기, 학교 안에서 교권을 지키는 일에 목소리를 내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진심으로 가르치되 경계를 세우기, 학부모와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맺어 상호 존중할 수 있는 관계 맺기 등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한다. 내가 찾은 나만의 방향과 속도였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렇게 조금씩 ’Only one, 나‘가 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