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전담으로 5학년 주먹 야구 2차시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1차시에 공을 주고받는 패스 연습을 하고 간이 주먹 야구를 2라운드까지 진행했다. 2차시에 주먹 야구 게임으로 들어갔다. 야구장 대형으로 하되 점수 배정을 1루는 1점, 2루는 2점, 3루는 3점, 홈을 통과하면 5점으로 변형했다.
홈으로 들어오는 학생들만 바로 점수를 반영하고 3 아웃이 되었을 때 1루, 2루, 3루에 있는 학생들을 모두 합산하여 점수를 배정했다. 만약 1루, 3루에 학생이 남아있으면 1+3=4, 4점을 득점한 것으로 인정했다.
야구의 기존 룰대로 하면 아무리 아이들이 열심히 해도 1, 2, 3루에 걸쳐 있는 상태로 3 아웃되면 0점이 된다.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0점 행진을 하다가 1점 정도 획득하게 된다. 처음부터 3 아웃된 팀과 계속 안타를 잘 쳐서 1, 2, 3루가 꽉 찬 상태에서 3 아웃된 팀이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 '원래 그래'라고 생각하며 진행할 수 있는 게임이었지만 아이들이 협력하는 과정을 보상하고 싶어서 점수 배정을 변형한 것이다.
5학년 4개 반을 지도했는데 마지막 반은 34대 33으로 마쳤다. 라운드마다 엎치락뒤치락했는데 학생들도 그것이 너무 흥분되었는지 수업 후 모든 학생들의 얼굴이 기분 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의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졌는데 이렇게 재밌는 건 처음이야.”
그 어떤 찬사보다 더 기분 좋은 수업 피드백이었다. 내 수업에 대한 최고의 찬사였다. 학생들은 게임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질 것 같은 순간, 그래도 애써 노력하는 학생, 질 것 같아서 체념하는 학생, 져도 즐겁게 웃으며 “졌지만 잘 싸웠다”하는 학생, 자신이 친 공이 파울만 당한다고 억울하다는 학생, 자신이 아웃되어서 억울하지만 참는 학생, 신나게 친구의 실수를 놀리는 학생, 놀리는 친구를 바라보며 그래도 꾹 참는 학생.
그날 경기에 임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수업이 끝나고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들은 게임할 때 성격 좋은 학생들이었다. 지고 있어도 팀원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파이팅을 외치는 학생을 볼 때 가슴이 벅찼다. 분명 열심히 뛰어도 따라잡지 못할 점수임에도 휘슬을 불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장을 뛰던 학생들의 모습에서 점수보다 중요한 것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게임에 임하던 학생들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회의 룰은 야구의 룰처럼 결승선을 통과하지 않으면 점수가 없다. 하지만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과 뭐라도 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 같지 않다. 지금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자신이 하는 일에 날마다의 성실함을 쌓아 올리다 보면 하루의 안타, 다음 날의 안타, 그다음 날의 안타, 그리고 어쩌다 행운처럼 온 안타를 치게 되어 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그날의 수업을 가끔 떠올린다. 그날의 수업은 내가 했던 수업 중 장외홈런에 가깝기에 두고두고 기억날 것이다. 무엇이 이 학생이 즐겁게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노력에 대한 보상을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1루와 2루, 2루와 3루는 다른 점수로 매겨졌기 때문이다. 1루와 2루는 분명 다르지만 야구의 룰로 보면 홈에 들어오지 않으면 모두 0점, 점수가 없기 때문에 똑같다. 하지만 나는 야구의 룰을 변형했다. 어쩌면 이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교육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수업은 사회의 룰을 조금 변형해서 결과보다 과정을 보상하며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더라도 거기까지 자신의 최선을 다해 달리는 학생을 위해 결과에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상'을 줄 수 있는 수업을 통해 너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님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다. 학생들이 더 많이 도전하고 실패하며 툴툴 털고 일어나 또 도전하는 공간이 되는 안전한 교실을 만들어주고 싶다. 어쩌면 나에게 그런 공간이 필요하기에 더욱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