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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링을 쓰며 다시 가르칠 용기가 생겼다

by 쓰는교사 정쌤

2023년 유명한 강사님의 글쓰기 수업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특강을 몇 번을 듣는 과정에서 내가 학교의 힘든 이야기와 이로 인해 병든 교사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다른 질문으로 들어간 것이 결국 종착지가 학교와 관련된 일이었다. 교권 침해가 일어나고 아동학대 고소로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시기였기에 나에겐 그 일이 너무나 큰 일이었다. 하지만 강사님은 왜 했던 말을 또 하냐며 그런 하소연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마음을 저널링 해 보라고 조언을 해 주셨다.

저널링이 무엇인지 몰라서 그때부터 책을 찾아보게 되었고 저널링과 관련된 여러 책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교사를 위한 치유저널』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고 『표현적 글쓰기』, 『아티스트웨이』 등을 읽으며 글쓰기가 내 마음의 응어리를 많이 풀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사를 위한 치유저널』에서 '저널치료(Journal Therapy)에서 말하는 '저널'이란 정신, 감정, 그리고 육체의 건강과 성장을 증진시키기 위한 치료적 목적을 가진 성찰적 글쓰기'를 말한다고 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일어나는 일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또는 외부에서 보는 관점으로 기록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일기(다이어리)와 달리, 저널은 자신이나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이해를 위해 내면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저널을 쓰는 사람의 내적인 경험, 반응, 그리고 인식과 깨달음에 초점을 맞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교사를 위한 치유저널』- Kathleen Adams, Marise Barreiro 공저, 이봉희 역, 학지사 출판


일기가 있었던 사실을 나열의 성격이 강하다면 저널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내면의 변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일기 쓰기를 꾸준히 해 온 나였지만 저널링이 생소했다.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나열하며 그때의 생각이나 감정을 쓰긴 했지만 거기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나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강사님이 조언해 주신 대로 책을 보며 내 속의 이야기들을 쓰고 또 써 보았다. 나를 자유롭게 구속하지 않은 채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을 모두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어떤 감정도 억압하지 않았다. 불안, 두려움, 걱정, 괴로움 등 내 안에서 생기는 모든 감정을 머리로 여과시키지 않고 썼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었다. 오로지 나를 구원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처음에는 썼던 글을 또 쓰고 또 썼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외부에 시선을 두며 나의 억울함에 가까운 글을 계속 썼다. 그렇게 공책이 넘어갈수록 같은 이야기이지만 나의 감정이 많이 정화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울면서 쓰지 않았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구나', '왜 나에게만 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들에 이르자, 그동안 교사 생활을 하며 평온했던 내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내게 일어난 일을 종이 위에 펼치면서 그때의 생각, 감정, 내면의 변화를 관찰하며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나니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연금술사에서 나오는 '마크툽(그렇게 될 일이었다)'이 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성공이 모든 것들의 우연으로 된 것처럼 실패도 모든 것들의 우연이 맞물려 어느 순간 딱 맞아떨어질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성공이 나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실패도 내 잘못으로만 그렇게 되는 게 아니었다. 우연이라는 운이 들어가, 톱니바퀴가 딱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 실패가 되기도 하고 성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제야 내가 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학교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많이 소진되어 있었고, 내면에는 '다시 교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 좋은 교사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순간들이 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한순간에 아닐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애쓴 시절이 아무것도 아니었나', '교사인 나에게만 학교에서의 모든 것이 소중했던가'라는 허무함도 함께 왔다. 그러한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종이 위에 쓸수록 늘어난 지면의 장수만큼 걱정, 불안, 괴로움은 조금 더 가벼워졌고 내가 바라는 모습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나는 여전히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픈 마음이 치유되고 나서 이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생각하는 저널링을 한다. 어떤 교사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저널링을 계속 쓰다 보니 직장인으로서의 교사를 넘어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를 꿈꾸게 되었다.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여전히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고, 교실 안에서 진심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 이 마음을 아끼지 않고 잘 쓰는 직업인 교사 정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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