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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꾸는 글쓰기'를 통해 내가 바라는 것은?

by 쓰는교사 정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교실에서 어떤 아이인지 먼저 안다.

"선생님, 00이 작년에 많이 혼났어요."

"선생님, 저 작년에 말 안 들어서 선생님한테 많이 혼났어요."

친구의 말에 00이는 자신이 작년에 어떤 학생이었는지 말한다.

"알지요. 선생님도 첫날 00이가 친구랑 때리고 노는 걸 봐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00이가 첫날의 모습보다 너무 좋아져서 기특하고 그걸 칭찬해 주고 싶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00이에게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이야기하며 칭찬해 주었다. 00이의 글쓰기 공책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4학년이 되어서 좋은 점'을 아이들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4학년이 되어서 좋은 점은'으로 시작하는 글을 써 보자고 했다. 짧게 써도 좋지만 자신의 생각을 쓴다면 그 까닭과 함께 쓰자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아이는 생각나누기를 할 때 "선생님이 엄할 때는 엄하고 놀 때는 신나게 놀아줘서 좋아요."라고 말을 했다. 다른 아이들이 "좋아요, 착해요"로 퉁치던 이야기를 이 아이는 어떤 모습이 좋은지를 알려주었다.

아이의 발표를 듣고 너무 기뻐하며 "00아, 그 말 선생님이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땐 신나게 노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리고 남을 피해 주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꼭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그 말이 너무 좋다고 강조했다. 이 아이의 말을 통해 다른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 학생의 '나를 가꾸는 글쓰기' 공책에는 내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함께 해서 쓴 글이 담겨있다. 몇 줄 쓰지 않아도 아이가 그 순간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더 기쁘고 그 말이 좋다. 여전히 장난을 치고 싶어서 손이 먼저 나가고 몸이 먼저 반응하는 아이다. 그럼에도 내가 주의를 주면 바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 모습에 희망을 간직해 본다.


'4학년이 되어서 좋은 점: 엄할 때 엄하고 놀 때는 놀아서

까닭: 공부할 땐 엄해야지 잘 배우고 놀 때는 제대로 놀아주셔서 좋다. 똑똑하고 멋진 4학년이 될 것 같다.'

이 학생이 쓴 글에 댓글을 쓰고 다음번 공책 검사를 하며 학생의 '네, ^^' 글자를 발견했을 때 기뻤다. 학생이 그 순간만큼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들이 많으면 분명 삶은 나아진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 주 수업 시간에 국어책에 나오는 '가끔씩 비 오는 날'을 읽고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자란 후의 모습을 글로 써 보자고 말했다. 그렇게 아이들과 2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생각 나누기를 하고 글을 쓰게 했다. 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를 적어도 된다고 했다.


미래의 꿈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없는 존재'라고 말을 하고 아이들에게 왜 그런지 물었다. 아이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학생은 그런 말을 기억하여 자신의 생각으로 풀어썼다.


‘나는 노력하면 될 수 있다.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인간은 무한한 존재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다. 노력을 하면 꿈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직접적인 첨삭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의 글을 관심을 갖고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학생들은 신난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썼을 때 함께 읽어주고 하트를 눌러준 이웃님들 덕분에 기분이 좋았던 것처럼 학생들도 그렇다. 선생님의 짧은 글이 좋고 별것 아닌 밑줄이 좋다.

모든 것이 민원의 대상이 된 학교 현장에서 '내가 이런 글쓰기를 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한다. 씁쓸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교사들에게 ‘열심히 하면 민원을 부른다’라는 뜻의 반어적 표현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민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왜 이걸 하고 싶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가르치면서 자기검열하며 '아동학대 고소'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를 계속 판단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일 하나를 하기로 한 것이다. 그게 '나를 가꾸는 글쓰기'이다. 학생의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 뿌리는 심정으로 가볍게 하고 싶었다. 핵심은 심는 게 아닌 뿌리는 것이다. 운이 좋아 학생 안에서 그 씨앗이 싹을 틔우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공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내면 나는 그 펼쳐진 마음을 응원한다. 그것으로 충분한 글쓰기다.


글을 쓰는 동안 자기 생각과 느낌을 꺼내고 다듬어서 쓰는 그 과정이 자신을 가꾸는 것과 닮아있다는 생각에 ‘나를 가꾸는 글쓰기(나가글)’라고 정했다. 평가받지 않는 글을 쓰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그렇기에 국어 교과에서 이루어지는 글쓰기는 첨삭을 하되 ‘나가글’에 대해서는 최대한 첨삭하지 않는다. ‘나가글’을 쓰면서 학생들이 힘든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자유를 느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학생들이 ‘나가글’을 쓰면서 자기를 표현하고 그 순간의 시원함을 누리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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