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유명 강사님의 유료 글쓰기 수업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특강을 몇 번 듣는 과정에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분명 다른 질문이었음에도 처음 대답은 달랐으나 결국에는 학교와 관련된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교권 침해가 자주 일어나고 아동학대 고소로 선생님들이 힘들어하는 시기였기에 내 안에는 그로 인한 뾰족한 마음이 있었다. 교사로서 너무 마음이 많이 아팠던 시기였다.
강사님은 그런 나에게 왜 했던 말을 또 하냐며 그런 하소연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 안의 고통은 나에게 중요할지 몰라도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강사님은 그 마음을 저널링 해보라고 조언을 해 주셨다. 이 일화는 나에게 나를 객관화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저널링,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
『교사를 위한 치유저널』에서는 저널을 ‘자신이나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이해를 위해 내면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저널을 쓰는 사람의 내적인 경험, 반응, 그리고 인식과 깨달음에 초점을 맞춘 성찰적 글쓰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존의 일기가 있었던 사실을 나열하는 성격이 강하다면, 저널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내면의 변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교사를 위한 치유저널』- Kathleen Adams, Marise Barreiro 공저, 이봉희 역, 학지사 출판
중학생 때부터 일기 쓰기를 꾸준히 해 온 나였지만 저널링은 생소했다. 학교에서 힘든 일을 겪으면서 있었던 일을 적고 그때의 생각이나 감정을 계속 쓰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나 그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이후 저널링, 저널테라피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내 속의 감정을 더 살펴보기로 했다.
책이 안내하는 대로 내 속의 이야기들을 쓰고 또 써 보았다. 나를 구속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놓아주고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을 모두 종이 위에 올려놓았다. 불안, 두려움, 걱정, 괴로움 등 내 안에서 생기는 모든 감정을 머리로 여과시키지 않고 썼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었다. 오로지 나를 구원하기 위한 글쓰기였다.
되새김질이 아닌 성찰의 시간
처음에는 썼던 글을 또 쓰고 또 썼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매달려 자꾸만 억울한 감정을 계속 쓰며 힘들었던 일을 ‘반추(되새김질)’하고 있었다.
내게 일어난 일을 종이 위에 펼치면서 그때의 생각, 감정, 내면의 변화를 관찰하며 나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나니, 내가 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학교 현장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많이 소진되어 있었고, 내면에는 ‘다시 교사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교사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순간들이 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한순간에 아닐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그리고 허무함이 몰려왔던 것이다.
공책에 쌓이는 기록을 보며 내 생각의 패턴이 나를 더 그 자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음을 깨닫고, 되새김질하는 것이 아닌 있었던 일을 통해 성찰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며 글을 썼다. 내 안의 감정이 많이 정화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울면서 쓰지 않았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구나’, ‘왜 나에게만 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이런 생각들에 이르자, 그동안 교사 생활을 하며 평온했던 내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만났던 학생들과 나를 존중해 주던 학부모님께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갖게 되었다.
내 안의 기준을 세우는 용기
그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면서 종이 위에 기록하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걱정, 불안, 괴로움은 조금씩 더 가벼워졌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더 선명해졌다. 저널링을 하면서 내가 여전히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 감정의 뿌리를 찾아 글을 쓰다 보니 아픈 마음이 조금씩 치유되면서 이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교사로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저널링을 계속 쓰다 보니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여전히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고, 교실 안에서 진심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아프기 전에도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하려고 애썼다. 그때는 학생과 학부모의 인정을 구하는 바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내 안의 기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올바르게 가르치려고 애쓰고 그것을 학생이나 학부모가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괜찮다. 내가 바르게 하고자 한 대로 행동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갑상선암 수술을 하고 난 직후인 2023년부터 이 마음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진심이 닿게 마음을 다해 가르치되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갖지 않는 이유는 인정을 얻지 못할 때 생기는 억울함, 피해의식을 갖지 않기 위함이다. 아직 완벽하게 주기만 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노력 중이다. 교사를 하는 동안은, 나를 만나는 학생들에게 내 마음을 다해 가르치는 것으로 충분한 그 상태에 이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