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을 좋아하지 않았다. 수동적으로 참는 느낌이 들어서,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픈 시간을 지나오며 알게 되었다. 버틴다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아프고 힘들던 시기, 힘든 일은 이상하리만큼 더 많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 일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조차 버거워 글로 옮길 수 없었다. 지금은 나름의 해석과 정리를 마쳤기에 굳이 쓰지 않게 된 이야기들도 있다. 다만, 그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그 시간을 지나던 중 동료 교사의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그래, 할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그렇게 몸을 던져서 깨지고 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자기야.” 그 말을 곱씹고 나서야 이 시간을 잘 견뎌내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 상처가 옅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할수록 더 공허해졌다. 나는 태풍 속에 서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화창한 날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알았다. 시련은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것을. 온전히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 뿐이라는 것도. 그래서 견뎠다.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나를 하루의 끝에서 스스로 다독였다. 이렇게 상처받았어도 오늘을 버텨낸 네가 기특하다고, 그 말 한마디를 나에게 건넸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 일들을 내 안에서 천천히 비워냈다. 소중한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고, 그 외의 것들은 흘려보내기로 했다.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의 양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고통을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로 설명한다. 이미 맞은 첫 번째 화살은 피할 수 없지만, 그 고통을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쏘는 두 번째 화살은 맞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상처받은 상태에서 나를 함부로 던지지 않기로 했다. 이미 충분히 아픈 몸과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저 자세를 낮추고, 그 자리에서 맞을 시련을 견뎌내기로 했다.
지금도 의도치 않게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되뇐다.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휘청거린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이제 조금 더 오래 버틴다는 것이다. 그 시간이 나를 해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믿게 되었다. 시련은 삶을 흔든다. 그러나 모진 비바람도 결국은 멈춘다. 그 시간을 지나고 나면 이전보다 단단해진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다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힘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