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교사 정쌤 Nov 04. 2023

나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 덕분이었다

내가 언제나 나답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가족들 덕분이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 4학년 전학을 하기까지 농촌에서 살았던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하고 살았다. 농사짓는 부모님은 열심히 일을 했고 엄마는 자식들을 위해서 언제나 맛있는 음식이 넘치게 해 주셨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다 비슷하게 사는 시골마을에서 나는 너무나 풍요로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들로 냇가로 뛰어놀며 지내던 시간이었다. 30분을 걸어야 나오는 분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작은 도시로 이사를 왔을 때, 그때 알았다. 우리 집이 그리 잘살지 못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참 잘 지냈던 것 같다. 가난했지만 가난으로 내가 힘든 것은 돈이 없는 불편함이었지 엄마, 아빠의 사랑과 보살핌은 충분히 받았기 때문이다. 성실한 아빠, 성실하고 언제나 에너지를 채워서 일하시던 엄마 덕분에 나와 형제들이 참 잘 자랐다. 형제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자기 몫을 하며 살고 있고 결혼해서 모두 자녀들도 키우고 있는 우리 가족들이 참 대단하고 좋다. 


그 시절을 보내는 동안의 힘듦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그 시절의 추억이고 그 덕분에 내가 다양한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덕분에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아파한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 덕분에 내가 원하던 공부도 하며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 어릴 때 휴직을 해서 내 손으로 두 아이를 키웠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고 있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을 결심하고 나니 새삼 남편에게 더 고맙다. 나는 남편 덕분에 내가 원하는 때에 이 일을 놓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또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할 것이다. 내가 교사로서 내가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일하고 나올 수 있게 곁에서 지켜주는 남편이 있어서 너무 고맙다. 덕분에 내가 기꺼이 나누는 교사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남편과 같은 회사, 같은 실험실에서 근무했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취업을 해서 다닌 나의 첫 회사에서 남편을 만난 것이다. 신입사원인 나를 열심히 가르쳐주던 주임이었던 남편과 사내 연애를 하면서 결혼을 결심하고 회사를 관둘 결심을 했었다. 그때도 '내가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를 한동안 고민했다. 다른 주임이 임신을 하고 유산기가 있어서 산전휴직에 들어갔을 때였다. 유기용매를 다루며 제품 실험을 하던 어느 날, 아이를 임신하고서는 이 일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순간 그럼 뭘 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린 시절 나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을 떠올렸고 교사가 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생각났다. 그렇게 나는 교사가 될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남편과 결혼하기로 하고 부모님께 회사를 관두겠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남편과의 결혼이 아니었다면 부모님께 나의 퇴사를 쉽게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남편 덕분에 내가 원하던 때에 회사를 관두고 교사가 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나의 신입시절과 나의 교대시절의 모든 것을 책임져 준 남편 덕분에 교사가 되었고 남편 덕분에 내 마음에 드는 교사로 살다가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제 살 것 같다. 이 글도 남편이 고마워서 생각을 정리해놓고 싶어서 쓴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숨이 막혔다. 내가 언제까지 아이들에게 '아동학대고소'라는 것을 걱정하며 가르쳐야 하나 하는 신세한탄을 많이 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현실에 숨이 막혀왔다. 그런데 언제라도 내려놓을 수 있다는 마음 덕분에 그래도 바른 소리 하면서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바른 소리를 하며 누가 이걸 녹음해서 고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이제는 안 하기로 했다. 어쩌긴 어째, 무혐의받으면 되는 거지. 그 과정에서 힘듦이 너무 지치고 어려우면 내려놓는 것이고 할 만하면 더 가르치다 나오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로 인해 피해 보는 아이들의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아니 교실 내의 무질서와 폭력, 무시와 조롱이 오고 가는 그 모습을 묵인하고 수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수업이 무가치해지는 그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 수업이 전부인 학생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열심히 가르치고 싶고 제대로 가르치고 싶고 아이들의 마음을 세워주고 싶을 뿐이다. 나의 수업이 필요한 그 학생에게... 꿈과 희망을 이야기해 주고 싶을 뿐이다. 나는 여전히 희망을 간직한 교사, 희망이 없이 가르치고 싶지 않은 교사이다. 교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가르치고 싶다. 공무원 월급 뻔한 거 알아도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에 자긍심을 간직하고 싶다. 자신을 스스로 도우며 자라려고 애쓰는 그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무기력한 교실이 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