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뭔가 돋아났다

2026년 2월 12일 목요일 날씨: 따사로운 햇살

by 대차게해봄

오늘은 살림을 살면서 유튜브 영상을 들었다. '즤집애라면 초등 영어 딱 2개만 시킵니다, 오른다는데 왜 불안할까 기술주 집중 분석, 최고의 아침 메뉴, 인생이 달라지는 시간 관리 비법, 꿈을 이뤄줄 핵심 지혜' 등등.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양지 덩어리를 썰어 소고깃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를 또 돌리고 돌릴 때까지, 세상 좋은 내용을 오만상 들으면서 집안일을 했다. 온갖 정보 습득 노동이 너무 가열찼을까. 소고깃국 맛을 볼 때쯤에는 편두통이 왔고 계란말이 간을 볼 때는 구역질이 았다. 그래도 재생목록을 닫지 않았다. 오기였다. 세상 좋은 건 다 살아내고 싶은 욕심, 세상 좋은 건 다 해보겠다는 욕망. 귀로 삼킨 것들을 다 토해내고 싶었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은 차고 햇살은 따뜻하고 공기는 부드러웠다. 봄이 오는게야. 새싹이 돋는 계절이지. 내 안에서도 뭔가 돋아났다.

나의 초짜 사주 선생님은 내 팔자를 두고서 '바위에서 피는 꽃'이라 했다. 믿거나 말거나, 믿어볼까. 바위에서 피는 꽃은 겨울에 흔적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겨울만 되면 히마리(‘힘’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가 없는 걸까. 겨울의 나는 땅에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 걸까. 봄에는, 봄에는? 슬슬 꽃망울 틔울 준비를 시작해야지. 봄 공기를 마시니 다시 발랄하게 설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 그게 다 내 팔자 때문인 거야. 내 팔자를 믿거나 말거나, 믿어보자. 봄과 여름에는 꽃을 피우고 가을에는 지고 겨울에는 사라지기. 사라진다는 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숨 고르기를 하는 거다. 다시 꽃을 피우기 위해 뿌리에서 기운을 채우는 일이다. 나는 그러고 싶다. 봄, 여름, 가을에는 신나게 설치다가 12월부터 2월 설날까지는 죽은 듯이 쉬고 싶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설쳐볼까. 뭘 하면서 설칠까. 일단, 친정에 가서! 우리 아빠 죽기 전에 수다 한 판 거하게 떠들어야겠다. 아빠에게 말할 힘이 남아 있을까. 내가 그 힘을 만들어주고 싶다. 말로 아빠를 붙들고 싶다. 수다는 사랑의 증거니까. 살아있다는 확인이니까.

<대차게해봄>

봄, 여름, 가을에는 대차게 뭐라도 해보다가,

겨울에는 대차게 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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