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씩씩해지려는 기록

2026년 2월 18일 수요일 날씨: 아빠는 겨울, 창 밖은 봄

by 대차게해봄

지난 토요일부터 친정에서 지낸다. 아빠(간암 말기)는 병원에서 누워 있고, 아빠 곁은 엄마와 권(남편)이가 교대로 지킨다. 나는 집에서 컹컹거리는 기침을 달고 사는 포도를 데리고, 그저 살림을 산다. 냉이 된장국을 끓이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넌다. 냉동실 청소도 한다. 지금 이 판국에 이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가도 친정집에 산뜻한 사람 냄새를 풍기고 싶다. 나의 살림이, 내가 해주는 밥이,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기를. 이런 기도를 한다.

내일도 엄마와 포도 앞에서 더 씩씩해지려고, 최근의 일을 기록한다.



16일 월요일

“너거 아빠가, 내 좀 살리도 내 좀 살리도 니는 뭐하노 내 좀 살리도, 그캐가 내가, 지금 수액 맞고 있잖아 어디 아프나, 물었더니, 온 천지가 다 아프단다.”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아빠는 혼자서 화장실에 가려다 또 넘어졌단다. 아빠의 넘어짐은 온 가족의 넘어짐처럼 아프다.


17일 화요일

권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아빠는 레드향 두 쪽, 된장국 10숟가락, 밥 1숟가락을 먹었다. 2주 정도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빠, 희소식이었다. 권이 덕분에 아빠가 회복할 거란 희망도 가졌다. 하지만, 잠시... 아빠가 피딱지같은 것들을 토했다. 권이가 그 사진을 보여줬는데 차마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18일 수요일

대변 실수를 했다. 혈변이었다.

“자꾸 혼자 일나가 막 화장실에 갈라캐. 그래가 권(나의 남편)이랑 같이 화장실에 가서 오줌 누고 일나가 걸을라카는데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나. 거울을 이래 보다가, 이제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카드라. 10월에만 해도 우리 살아가 병원에서 나가자 카면서 막 신나게 살았거든. 근데 이제는 너거 아빠도......”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

병원에는 권이가 있기로 하고, 엄마랑 포도랑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너거 아빠 저래 되고 나서는 고기도 처음 먹는다. 혼자 살면 누구랑 이래 묵노.”

엄마는 혼자 살 생각을 하면서 쌈을 크게 쌌다. 씩씩하게 먹었다. 내가 미리 밥을 잘 해뒀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눈물이 참 많은 사람인데, 오늘은 엄마와 포도 앞에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울어도 된다. 그런데 울면, 아빠의 팬티를 깨끗하게 빨지 못했을 것이다. 포도를 씻기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조금만 슬퍼해도 포도는 바로 알아챈다. 만6세 포도와 나는 지금도 탯줄이 있는 것처럼 연결되어 있나 보다.

이 기록을 남기며 혼자서 실컷 울었다. 이제 코를 훽 풀고 눈물을 닦고 꿀잠을 자야지. 내일도 가족들을 챙기느라 분주할 것 같다.

<대차게해봄>

친정집에서도 살림

살리고 살리고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7화마음과 몸의 분리 현상을 해부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