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실적이고 찌질한 소송 이혼 이야기 1.
소송이혼의 대략적인 절차는 이렇다. 원고가 소송대리인을 선임한 후 소장을 작성해서 피고에게 보낸다. 피고는 소장을 받은 후 한 달 내에 답변서를 제출한다(만약 제출하지 않을 경우 재판 없이 원고 승소로 끝이 난다). 답변서를 받은 법원은 대략 2~3달 이후로 1차 변론기일을 잡아준다. 변론기일은 소송대리인이 있다면 당사자는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물론 참석해도 된다). 1차 기일에 소송이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증거나 답변서를 보완해서 다시 2~3달 뒤에 2차 기일이 잡힌다. 판결이 날 때까지 이 변론기일을 반복하는데 보통 2~4차 사이에 끝이 난다. 그리고 소송이혼을 시작하면 필수적으로 조정을 거치게 되어있는데 협의와 소송 그 중간쯤에 있는 거랄까. 법원에서 주관하는 조정기일에 참석하여 당사자들끼리 협의로 마무리할 수 있게끔 마련하는 자리이다. 조정날짜는 1차 기일 전에 미리 잡히는 경우도 있고 나처럼 변론기일 중간에 잡히는 경우도 있으니 정해진건 없다.
법원의 시계는 느리게 간다
소장을 접수한 날을 기준으로 3개월 뒤에 1차 변론기일이 잡혔다.
세상에는 소송을 할 만큼 큰 분쟁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구나.
법원은 매달 신용카드 할부로 겨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 내 마이너스난 재정상태 따위에 관심 없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더 암담한 것은 소송이 1차 기일에서 끝날 가능성은 거의 없기에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 몇 년 전 친구가 이혼할 때 막대한 손해를 보면서까지 협의로 이혼을 했는지 약간은 이해가 갔다. 그 친구는 돈으로 시간을 산거다.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조차도. 변호사조차 상담하러 갔을 때 웬만하면 협의를 권한다고 했다.
잘 기다리는 방법은 잊고 있는 것이다. 소송대리인이 얼마나 많은 업무를 대신해 주는지 잘은 모르지만 기일이 다가올 때 답변서를 써야 하는 날 빼고 평소에는 내가 소송 중이라는 사실을 잊으며 살 수 있었다. 하루하루 감정을 추스르고 육아를 하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눈 깜짝할 새 1차 기일이 되었다. 나는 참석하지 않았고 변론이 종료되고 변호사는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1차 기일이라 역시 진행된 건 크게 없고요.. 2차 기일은 1두 달 뒤로 잡혔어요." 배정된 판사와 상대방 측 주장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을 해준다.
"피고는 나왔던가요?"
"네. 출석했더라고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던데요?"
그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직은 마음이 덜 추슬러졌나 보다. 그나저나 12월이라니. 또 두 달 동안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건가.
"변호사님, 지금 저한테 제일 급한 건 양육비예요"
"네. 알고 있어요. 2차 기일에서는 무조건 사전판결을 받도록 진행할게요"
변호사님만 믿겠다는 상투적인 말로 전화를 종료했다.
여기서 잠깐 그의 제일 지저분한 행태에 대해 하나 고발하자면 나는 급하게 신혼집을 나오느라 짐을 거의 챙기지 못했다. 아이짐과 당장 입을 옷가지 몇 벌만 챙겨 왔기 때문에 겨울이 다가오는데 나는 입을 옷이 전혀 없었다. 별거 2주 후 짐을 가지러 집에 가봤지만 그가 비밀번호를 바꿔놔서 들어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판례에 따라 다르지만 문을 따고 들어갈 경우 주거침입죄가 성립할 수도 있어 나는 무리한 모험은 감행하지 않기로 했다)날씨가 추워지자 나는 큰 맘먹고 그에게 처음으로 연락을 했다. 놔두고 온 짐들을 달라는 문자였다. 최대한 정중하게 문자를 했지만 돌아온 답장은 "다 끝나면 가져가라"는 말이었다. 치솟아 오르는 화를 꾹 누르고 "이제 날씨가 많이 추운데 아이가 입을 옷이 없으니 아이옷만이라도 줘"라는 말에는 무응답으로 내 부탁을 거절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어차피 끝난 마당에 뭐 때문에 이렇게 불필요한 감정낭비를 하는 거지? 아니 다 떠나서 자기 아이인데 걱정도 안 되나? 하긴 별거 후에 양육비는커녕 아이안부조차 한 번 묻지 않은 인간인데.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변호사에게 짐을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고 변호사는 이 부분도 강하게 어필해 보겠다고 했다. 시간이 흘러 2차 기일이 되었을 때 나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하는 생각에 회사일에 집중을 거의 하지 못할 정도였다. 변론을 끝내고 변호사가 전화를 걸어오자 나는 진동이 채 한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아삼님, 좋은 소식이에요. 오늘 양육비 사전판결이 내려왔어요."
긴장된 몸이 이완되기 시작하면서 안도감이 서서히 퍼진다.
"또 하나 좋은 소식은 짐에 관해서 판사가 명령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짐을 돌려주길 바란다는 권고도 같이 내려왔어요"
"아! 감사합니다. 너무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아이 면접교섭도 진행하라는 사전판결이 내려왔어요. 2주에 한 번이요. 이건 피고랑 직접 날짜시간 조율하시면 될 거 같아요. 양육비 미지급이나 면접교섭 미실시할 경우 벌금을 낼 수도 있고 판결에서 불리한 입장이 될 거 기 때문에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되지만 혹시 늦게 주거나 덜 주거나 하면 저한테 꼭 말해주세요."
수확이 좋다. 소송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얻은 쾌거다. 게다가 다음 기일은 변론이 아니라 조정기일이라고 한다. 어쩌면 다음을 마지막으로 소송을 끝낼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하며 나는 통화를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