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있고 소송이혼 했습니다.
나는 혹시라도 누군가 결혼을 할 때 뭘 제일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물으면, 주저 없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답하고 싶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다툼이었다. 나는 감정이 격앙되면 싸움을 피하는 성격이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인 탓에 우리의 싸움은 늘 작은 불씨에서 산불이 되었다.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 끝없는 싸움 속에서 우리는 지쳤다. 이미 예전에 끝나버린 관계였는데 우리는 뭘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던걸까.
별거 후 한 달 뒤 소송을 시작했다.
한 달은 내 나름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이었다.
항상 다툼이 있으면 그는 우리 집 앞에, 회사 앞에 서프라이즈로 찾아와 나에게 사과를 하곤 했다. 물론 나는 그게 전혀 달갑지 않았지만.
또 어디선가 그가 불쑥 나타날까 맘 졸이며 지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커졌다. 어떤 리액션도 없는 그에게서 암묵적인 동의를 읽고서야 소장을 날린 것이다.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닌 그 애매한 관계에서 내가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전적으로 친정뿐이었다. 별거를 시작하면 생활비는커녕 양육비도 주지 않는 사람들이 허다하고 아직 법적으로 부부인 이상 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너무 준비 없이 나온 건가 하는 후회를 잠깐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나는 직장인이니까, 내일부터 당장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 주변에 있는 모든 어린이집에 전화했고 상담과 입소가 가능한 한 곳을 찾아서 바로 진행했다. 바로 아이를 기관에 오래 맡기기도 마음이 아파 없는 형편에 하원도우미도 구했다.
변호사 수임료를 3개월 할부로 긁고 며칠에 걸쳐 20쪽에 달하는 소장을 작성해서 보냈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소장을 작성해야 한다기에 연애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들추었다. 아픈 과거를 떠올린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글로 쓰면서 한번 털어낼 수 있었고 그의 허물만 그러모은 종이를 읽고 있자니 '그래, 역시 이런 놈이랑은 이혼하는 게 맞아'라는 정당성도 부여됐다.
그와 내가 협의이혼을 하지 못하고 소송이혼에 이른 것은 구차하게도 재산분할/양육비가 협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양육권은 단 한번도 주장하지 않았다. 부성애의 부족일까 어차피 승산이 없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집 명의부터 모든 경제관리를 그가 일방적으로 독재해 왔기에 나는 재산분할과 양육비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었고 받아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애쓰는 그가 참 쪼잔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반대의 입장이었다면 그는 아마 나를 모성애가 없는 대역죄인으로 만들었을 거다. 어쨌든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니 우리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착실히 소송을 진행해 나갔다. 그는 내가 소장을 날리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인지 그날 바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일주일도 안되어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날의 싸움으로 별거가 시작되었긴 하지만 그날만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미 이틀에 한 번꼴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으니까.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은 마음은 진즉부터 있었다. 그렇게 신중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는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왔다. 막연히 이혼 후를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과 실제 겪어보는 것은 달랐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때는 '내가 잃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묵직한 공포를 느껴볼 수 없으니까. 하루하루가 1년처럼 흘러갔다. 1초마다 수십 번씩 감정의 파도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했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하는 끝도 없는 원망과 '잘했어'라며 나를 위로하는 체념,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하다가도 '어떻게 아이 안부조차 한 번도 묻지 않을 수가 있어'라는 분노(는 대개 이런 놈이랑은 이혼하는 게 맞다는 합리화로 끝났다), 내가 받았던 모멸감과 수치심에 대한 증오, '내가 좀 더 참았으면 괜찮았을까' 하는 후회, 함께했던 좋았던 추억에 대한 그리움, 그때의 반짝반짝했던 나, 웃고 있었던 우리 가족. 부질없는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생각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아 나를 괴롭게 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명백한 사실 하나만 붙들고 겨우 하루하루 살아내는 삶이었다. 하지만 무너져서는 안 된다. 아이의 행복은 양육자의 행복에 따라 결정되니까. 나는 아이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내 부모님을 위해서 행복해야만 했다.
이때쯤부터 살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 온전히 빠져있는 순간에는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마음도 편안해졌다. 감당할 수 없는 내 정신상태가 나도 두려워 쓸데없는 생각이 들 때면 안정제를 털어 넣듯 책을 붙잡곤 했다.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무슨 감정이든 종이 위에 옮겨놓고 나면 펑펑 울고 난 다음처럼 속이 시원해졌다. 심리상담도 다녔다. 낯선 사람에게 눈물과 마음을 쏟아내며 위로를 받곤 했다. 지금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해야 할 때라고, 내 마음이 건강해지는 게 최우선이라는 걸 각인시켰다. 그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 주변사람들과 책, 상담,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 그리고 항상 나를 웃음 짓게 하는 내 아이 속에서 내가 점차 안정을 찾아갈 동안 소송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