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달라진 것들

내 삶의 터닝포인트

by 아삼

나의 세상은 크게 두 변 변했다.

첫째는 아이를 낳았을 때.

둘째는 이혼했을 때.

둘 다 절대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분명한 사건이었다.


어떤 일이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 에피소드고 영향을 준다면 사건이다.


이혼하기 전의 나도, 이혼 후의 나도 내 선택으로 이루진 내 삶이니 모두 존중하지만 굳이 꼽자면 나는 이혼 후의 내가 더 좋다.




우선 이혼 후 물리적으로 많은게 바뀌었다. 나는 행복을 꿈꾸며 보금자리를 꾸몄던 구축아파트에서 친정부모님이 거주하는 주택으로 거취를 옮겼고 시아버지가 돌봐주시던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내 짐도 줄었다. 상당히 많은(거의 대부분의) 짐을 신혼집에 놓고 온 채로 돌려받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강제로 미니멀라이프를 살게 됐다. 처음에는 짐을 돌려주지 않는 그에게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꼭 필요한 물건들은 없었구나 라는 스님같은 깨달음이 생겼다. 정말로, 없어서 죽을 것 같을 정도로 필요한 물건은 없었다. 심지어 나는 꼭 필요해서 다시 산 물건도 없다. 물론 당장 입을 옷가지는 몇 벌 구입해야 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차이는 이 정도 외엔 없었다. 정말로 바뀐건 내 내면이었다. 나는 인생에 큰 도전이랄만한건 해보지 않고 무난하고 평범함의 극치인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시련에 대한 역치도 낮은 사람이었다. 가령,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어떤 도전에 실패한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진짜 대단하다.. 나였으면 죽어버렸을거야. 어떻게 살아 힘들어서?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약한 들풀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겪어보니 알겠다.

그 사람들은 살아가는게 아니라 버티는 거였다는걸. 버티다 보면 언젠가 살아갈 날이 온다는걸.



또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어느 날 아이가 잠든 밤에 거실에서 조용히 혼자 책을 읽다가 문득 깜짝 놀랐다. ‘이게 얼마만에 느껴보는 평안이지?’ 결혼생활동안은 아이가 잠들면 이제 그가 언제 퇴근할까 맘졸이며 두근대는 마음을 안고 자는 척 누워있곤했다. 아니면 대체로 불행의 늪에 빠진 채로 베란다 창문으로 아파트 앞동을 바라보며 감옥에 갇힌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더 이상 그럴 일은 없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온전히 내 자유시간이고 싸움을 하느라 쓸데없는데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없다. 그 에너지를 아껴서 아이와 신나게 놀아주고 매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또 이제 나는 가장이었다. 물론 친정부모님께 신세를 지고 있긴하지만 아이와 독립할 준비를 해야했다. 둘이서 나눠들던 책임감을 혼자 들기 시작했다. 양육비에 기대지 말자고 다짐했다. 뭔가에 너무 의지해버리면 그게 사라졌을때 힘들테니까. 돈을 벌기 위해 뭐든 해야된다는 생각에 투자공부를 시작했다. 미친듯 책을 사들이고 돈을 아끼려고 패딩한벌로 겨울을 났다. 화장도 하지않고 엄마 로션만 대충 바르고 다녔다. 원래도 커피나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더 극단적으로 절약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돈이나 책값외에는 지출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것은 이 때 나는 행복했다는 것이다. 원래도 독립적이고 내 직성대로 살아야만 속이 풀리는 나는 그에게 모든 재정을 맡기고 살아가는것보다 한 푼이라도 내 손으로 관리하는게 좋았고 자립을 준비하는 내 스스로가 뿌듯했다. 그렇게 멋부리기를 좋아하던 딸이 손질안된 머리와 맨얼굴, 아이와 씨름하느라 늘어진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본 엄마는 속이 많이 상하신듯 입을 옷을 한 벌씩 사다주시곤 했으나 행복해보이는 나를 보고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그에게서 자유로워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를 잠식해오던 고통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시간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평생 이 고통과 함께하겠다 마음먹은 순간부터 서서히 나는 괜찮아졌다. 노래가사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별까지 사랑의 과정이라고. 떨어져 있으니 마치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은 듯 그의 입장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내가 무슨 상처를 줬는지도 되짚어봤다. 불행이라는 늪에서 내가 숨쉴 구멍을 찾아 허우적댈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제3자의 눈을 빌린것처럼 객관적으로 상황이 이해되고, 납득되기 시작했다. 그에따라, 내 마음이 평화와 행복을 찾음에 따라 그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던 마음들이 설 자리를 잃고 떠나기 시작했다.


분명 힘든시간을 겪어야 했지만 결국 행복한 나를 보며 내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한 이혼인데 행복하지 않으면 이혼한 보람이 없잖아. 나는 분명 괜찮아지고 있었다.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