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누구에게까지 밝혀야 하나요?

어린이집 학부모들과의 불편한 만남

by 아삼

이밍아웃(사람들에게 나의 이혼 사실을 고백하는 것). 막연하지만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이혼 전에는 몰랐던 불편함 중 TOP1이다. 나는 당당하게 이혼을 밝힐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단 친구들에게만. 다른 경우의 수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분명 행복을 위한 새로운 출발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그리 축하받을만한 일은 아니다. 이혼기념일 따위를 sns에 게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나 역시 모르는 사람이 내 근황을 알게 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성격 탓에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내 이혼소식을 알렸다. 친구들은 내 예상대로 아주 친절하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적절한 침묵과 적절한 말을 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발생했다. 그러니까 '이성'이 아닌 말 그대로 '사람'. 예를 들면 아이가 접점이 돼서 만나는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들 같은. 나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선호하는지라 이 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없기도 했다. 그런데 하원 후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학부모들과 종종 스몰토크를 할 일이 생긴다.

"샛별이는 아빠오기 전에 항상 얼른 일찍 저녁 먹이고 씻겨요. 아빠 오면 밥을 안 먹고 놀려고만 해서"

"네.. 그렇군요 ^^"

"구름이 아빠가 육아를 안 도와줘서 힘드니까 자주 싸워요"

“네.. 그렇군요^^”

여기서 이밍아웃을 해야 하나? 아빠를 언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하나?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입은 굳게 닫혀 미소만 짓고 있다.



타인과의 대면에서 처음으로 이혼해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를 드러내는 말을 하기 마련인데 굳이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밝힐 이유는 없지만 말하지 않고 있자니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아마 이혼을 했거나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내 이혼사실을 주변에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같은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을 테지만 이혼 이후에 만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종류다.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한 만남이나 지속적인 교류가 있을 사람이라면 말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베이비시터분께는 당연히 말해야 한다. 내 경험상은 여러 가지로 더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가벼운 만남에는 내 신상을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종종 고민이 생긴다. 물론 이혼을 하기 전에도 있었던 고민이지만 내 유년시절부터 이어져온 결핍을 드러내지 않기로 결정한 건 전혀 양심에 타격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혼을 밝히지 않는 건 항상 내 양심을 따끔따끔하게 했다. 어쩌면 내 열등감일지도 모를 그것은 얕은 관계의 사람들에게 가십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늘 내 입을 막았다.


그렇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갑자기 TMI(Too Much Information)를 얘기하면 당황스러울 상대방은 어쩌겠는가? 차라리 누가 물어봐줬으면! 누가 물어본다면 당당하게 "저 이혼했어요"라고 얘기할 마음은 항상 품고 있었다. 하지만 주제에 한번 올라올 법도 한 “00이 아빠는 무슨 일 하세요?”따위의 질문 한 번 없다. 아빠가 한 번도 하원을 시키지 않는 집은 우리 애 밖에 없지 않나? 대충 눈치들 채고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내 뇌내망상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왜인지 비밀 아닌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그 불편함은 자연스럽게 기피로 이어졌다. 빨리 이 놀이터를 벗어나고 싶은 엄마 마음은 전혀 모른 채 아이는 매일 늦게까지 남아 놀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무리를 지어 얘기를 나누는 엄마들을 애써 외면하며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멀리 떨어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 시간을 견뎠다.




다행히 요즘은 날씨가 추워서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도 없는 바람에 누군가를 마주칠 일이 없다. 덕분에 매일 불편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행복이다.


아! 비밀 아닌 비밀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는 게 이렇게 불편한 거였다니! 이마에 써붙이고 다닐 수도 없고 난감한 노릇이다. 하지만 이 또한 이혼에 포함된 과정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정답이 없는 문제라 아직도 나는 어렵다.


이혼을 준비할 때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 이혼 그 후의 현실적이고 지질한 고민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