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후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혼 후 현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겠지만 그중에서도 육아는 단연코 첫 번째다. 둘이서 해도 힘든 육아를 혼자서 하기로 마음먹은 것부터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나는 이혼할 때 언니가 해 준 카톡이 큰 위로가 되었는데 이런 말이었다.
너는 아기 잘 키울 것 같아
왜?
너는 키우기로 결정했잖아.
조금 부족한 환경이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적더라도 그래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옆에 있어주기로 결정한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훌륭한 엄마다.
나는 친정에 살고 있지만 부모님도 아직 경제활동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오롯이 육아를 전담해 주실 수는 없다. 어린이집:나:부모님 = 4:3:3의 비율정도로 육아를 하고 있다. 3이 아니라 0.3이라도 얼마나 감사한가. 육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아이 한 번 안아주고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사람에게 각골난망의 고마움을 느끼지 않던가. 물론 지금은 조금 자라 그만큼 손이 가는 신생아는 아니지만 함께 키워왔음을 절대 부정할 수 없다. 결혼할 때 자녀계획이 있으면 신혼집은 무조건 친정 근처에 사는 게 좋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듯이 나 역시 출산 이후 친정에 와보니 편하기 짝이 없었다. 결혼생활동안 시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시긴 했지만 며느리가 어디 그동안 누워서 핸드폰이라도 볼 수 있던가? 감사함과 편함은 엄연히 별개다.
애초에 그의 육아비율은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없어진 일상에 불편함도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혼자서 아이와 고군분투하는 동안 그가 누워서 자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그는 본인이 더 아이를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만족스러운 육아참여율을 보여왔기 때문에 없어져도 육아에는 아무 타격이 없었다. 그냥 애초에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니 전혀 힘들지 않았다. 주말? 어차피 그는 주말출근이 일상이었기에 원래도 나는 시아버지와 외출을 하거나 혹은 아이와 둘이서 외출을 하곤 했다. 갈 곳이라곤 집 근처 공원밖에 없었지만 집에만 있기 답답하여 하루에 공원을 3군데씩 다니곤 했다. 그래서 현재도 매주 주말 아이와 둘이서 외출을 다니지만 오히려 좋다. 나는 이혼 후 육아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차'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입니다)
나에게 육아자체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와 싸우며 낭비되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그에 따라 아이를 잘 돌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힘들었다. 그리고 사사건건 부딪치는 다른 육아관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 선택이다. (물론 친정부모님의 잔소리가 있긴 하다) 책임도 오롯이 내가 지는 거지만 나는 이게 좋다.
이혼하고 나서 처음에는 나만 육아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데 그는 자유를 누린다는 생각에 분하기도 했다. 나는 슬픔을 곱씹을 시간도 없고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는데. 아이가 아프면 내가 발을 동동 굴릴동안 그 사실조차 모른 채 잠이나 자거나 친구나 만날 그를 생각하니 억울했다. 그런데 그 억울한 시간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내가 버틴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은 아이로 인해 내가 치유받는 순간들이었고 아이와 내가 함께 자라고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나고 보니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없었다면 그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은 나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불쌍했다. 과연 그에게 그런 부성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식 얼굴도 매일 보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게다가 한창 귀여운, 태어난 효도를 다 한다는 3~4살 때의 모습을 눈에 담지 못하는 그가 오히려 불쌍했다. 그도 물론 양육비와 면접교섭으로 아빠로서의 의무를 다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생각까지 든 것이겠지만.
내가 혼자 키운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사실 어린이집과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가끔 만나는 아빠, 할머니, 고모, 가끔 만나는 돌봄 선생님들, 그리고 이모들과 삼촌들의 도움으로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 이혼을 하고 나니 오히려 아이를 한 번이라도 돌봐주는 손길이 늘었고 이렇게나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키우고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되면서 주변인들에 대한 감사함도 늘게 됐다.
너를 처음 품에 안아본 날 엄마가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