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아버지의 장례식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by 아삼


전 시아버지는 폐암 4기셨다. 내가 결혼을 하기도 전, 그러니까 그를 만나기도 훨씬 전부터 시아버지는 아프셨다. (편의상 시아버지라고 적겠습니다) 내가 생각 없던 결혼을 급하게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시아버지의 지병이었다. 혹시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아들 결혼하는 모습도 못 보고 가시면 어떡해,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며 효도하고 싶은 그의 마음에 나도 동의했고 그렇게 바쁘게 결혼식을 올렸었다.


마무리는 좋지 않았지만 결혼생활동안은 나는 시아버지와 사이가 좋았다. 시아버지는 참 좋은 분이셨다.(전 조정이혼 편을 보고 오신 분이라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람은 원래 다양한 면이 있고 팔은 안으로 굽는 게 당연하다 생각한다.) 늘그막에 딸 하나 얻으신 듯 나에게 모든 걸 다 해주시고 싶어 했다. 아기가 태어나고는 일주일에 3~4번씩은 뵀다. 전남편 없이 셋이서 외출도 많이 다녔다. 시아버지께서 직접 한 요리를 먹어 본 며느리가 있는가? 나는 있다. 그것도 여러 번. 내가 육아휴직 후 복직할 때는 아기도 전담으로 맡아서 봐주시기도 했다. 참 좋은 분이셨다.




마지막 싸움이 있던 날 나는 아기를 데리고 신혼집을 나오며 시아버지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더 이상 시아버지의 사과하는 연락을 받고 싶지 않아. 시아버지가 왜 자꾸 나한테 사과해야 해? 내가 시아버지랑 결혼했어?

항상 그와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그는 모든 싸움을 양가 부모님에게 알렸다. 효도하고 싶어 결혼을 서둘렀는데 효도는 커녕 매번 아들 부부의 싸움 소식을 전해듣고 아프시기를 반복했다. ) 며칠 후 사과와 잔소리가 반씩 섞인 연락을 받아야 했고 불만 가득한 표정을 전화기 너머로 숨기며 "네"라고 대답해야 했으며 아물지 않은 화를 품고 잘 지내는 척 며느리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그와 화해할 생각도 없고, 이젠 정말 이혼이니 시아버지 연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는 1년이 훌쩍 지났다. 격주로 면접교섭을 할 때마다 으레 할아버지댁으로 가겠거니 생각했다. 어차피 전남편은 혼자서 아이를 돌볼 수 없을 테고, 시아버지는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시니까. 그런데 어느 날 면접교섭 일정을 조정할 수 있냐는 전남편의 연락에 이유를 묻다가 우리의 이혼확정판결과 동시에 시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망설였다. 그런데 더 이상 망설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내 마음의 찝찝함을 덜어낼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덜어내지 않으면 평생을 안고 살아야 할.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00이 할아버지가 지금 위독하시다네.. 찾아뵙고 사과드리고 싶어"

"네가 왜 사과를 드리는데?"

"그냥.. 그동안 나한테 잘해주셨으니까. 그래도 내가 자식이었는데 어찌 됐든 가슴에 대못박은 거잖아."

".. 난 잘 모르겠지만 그냥 네 마음이 편한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

"사과드려야겠어. 전남편한테는 아무 감정 없는데 시아버지한테는 계속 죄송스러운 마음이 남아있어서 찝찝해."

어떤 고민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답이 보이기도 한다. 친구와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바로 전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나도 면회 갈 수 있어?"


이혼 후 우리 사이는 꽤 정중해졌다. "네가 감히!"라고 말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지금 중환자실이라 수시면회가 안되거든. 병원에서 연락 오는 대로 말해줄게"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친구들과 가족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미쳤냐고 했다. 네가 거길 왜 가냐고. 어차피 내가 직접 경험했던 시간들과 나눴던 추억들 사이에 오고 간 마음을 그들에게까지 납득시킬 필요는 없다. 결국 이 행동도 내 마음의 짐을 덜고 싶은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라는 부연설명은 더더욱 필요가 없다.


며칠 후 면회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고 아이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긴장되는 마음을 붙들고 병실로 들어갔다. 새하얀 백발에.. 앙상한 몸.. 주렁주렁 몸에 꼽힌 관들.. 낯설었다. 아이도 낯선 병원공기를 감지한 듯 내 품을 파고들었다. "저 왔어요.." 예상외의 환대에 어안이 벙벙하다. 침대주위로 자리를 잡고 앉아 마치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얘기들이 오간다. 뭐가 그렇게 고마우신 걸까. 나는 시아버지의 건강을 회복시킨 의사라도 되는 것처럼 시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연신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같은 병실에 계신 아주머니는 "아유~ 며느리 얘기를 얼마나 하는지 며느리를 제일 이뻐하더라!"라고 하셨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저.. 며느리 아닌데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을 닫고 어색한 미소만 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가 소란스럽게 낸 소리에 간호사들이 달려와 아이는 데리고 오면 안 된다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쯤은 감사한 마음으로 쫓겨나기 전 제일 뒤에 남아 시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꼭 붙잡고 별거 이후 내내 드리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죄송해요. 너무 죄송해요. 계속 사과드리고 싶었어요. 늦게 와서 그것도 죄송해요."



"안다.. 다 안다.."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더불어 겨우 낸 목소리.

사과를 드리는 것도 힘든 대답을 강요하는 건가 싶어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말만 남기고 도망치듯 서둘러 나왔다.


그와는 위로를 주고받을 사이가 아니었기에 고인 눈물을 감추며 덤덤하게 인사를 한다.


집에 가는 길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래, 갔다 오길 잘했어. 용기 내서 사과하러 가길 잘했어.'

별거 후 줄곧 마음한구석 자리를 내주고 있었던 찝찝함이 사라졌다.




이틀 뒤, 호스피스로 가셨고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신 상황에서 엉엉 울며 나에게 상주로 내 이름을 올려도 되겠느냐는 전화를 해왔다. 친척들은 아직 이혼소식을 몰라서 그런다는 말을 덧붙이며.

우습다. 우스울 것도 없는 이 상황이.

"그래, 마음대로 해. 어차피 자리는 못 지키니까."

실컷 울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실컷 웃고 싶은 기묘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문병을 다녀온 지 이틀 만에 이럴 수가 있지? 나를 기다리신 건가? 끝내 나에게 듣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실 때까지? 분명 가장 가까웠는데, 전 며느리라는 애매한 포지션이 통곡하며 죽음을 애도하기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영위하기도 어렵게 했다. 실감이 안 났다. 내 폰에는 분명 이렇게 웃고 계신 동영상이 많은데. 상주로 이름을 올리니 장지와 발인일이 기입된 부고장이 날아왔지만 나에겐 이걸 보낼 곳도 없다. 회사에서 장례휴가를 받을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 새삼 내 위치를 실감 나게 했다.


퇴근 후 장례식장을 찾았다. 영정사진을 봐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건강한 모습으로 웃고 계신 눈을 마주하기가 어려워 얼른 절을 한 뒤 식사는 하지 않고 조문을 마친다. 가지 않았다고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한 때 가까웠던 사람에 대한, 아이의 할아버지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했다. 내가 할 일은 딱 거기까지였다. 상주의 슬픔을 위로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 나는 전 며느리니까.



저번에 둘이서 국밥 먹으러 갔었는데 거기 맛있었잖아요. 다음에 또 가기로 했었는데 결국 다시 못 갔네요. 거기가 정말 맛있었어요. 그동안 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손주는 제가 잘 키울 테니 걱정 마시고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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