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다 지고난 어느 봄날, 이혼소송이 끝났다

나의 현실적이고 찌질한 소송 이혼 이야기 2.

by 아삼

평생 가볼 일이 있을까 했던 법원에 벌써 몇 번째인지. 그와 서류를 내러만 3번, 양육자영상을 보러 1번, 오늘 조정기일까지. 이 무겁고 차분한 공기도 덜 낯설다. 엘리베이터를 찾는 발걸음도 익숙하다. 조정기일은 반드시 본인이 참석했으면 한다는 변호사의 말에 연차를 내고 참석했다. 조정기일에는 신랑 신부에서 피고와 원고로 전락해 버린 당사자 2명, 조정을 도와줄 조정위원 2명, 소송 대리인(변호사) 각 1명, 판사까지 총 7명이 함께한다.


나는 양육비와 재산분할에서 협의가 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소송이혼을 진행하게 됐다. 좀 남들처럼 고상하고 우아하게 이혼할 순 없는 건가. 아이를 위해서라도 웃으며 안녕할 수 없나? 하긴. 너덜 해진 마음을 붙들고 하는 이혼에 우아란 어울리지 않는다. 상처 없는 이혼은 없으니까. 똥을 굳이 밟아야 하나, 더러워서라도 그냥 너 다 해라 줘버릴까, 잠시나마 홧김에 그런 생각도 했지만 곧 고개를 흔들며 떨쳐버렸다.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니까. 이혼 후는 현실이고 나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포기는 안 될 말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우리 부모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한 분, 남자 한 분이 오늘의 조정위원인가 보다. '하루종일 싸움 중재하려면 저분들도 많이 피곤하겠다. 이분들은 정규직인가 외부업체 파견직인가'라는 실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조정이혼 절차는 이혼에 대한 간략한 상황을 브리핑한 다음, 원고와 피고가 번갈아가면서 한 팀씩 남아 각자의 주장을 한다. 조정위원들이 번갈아가면서 이야기를 듣고 조율해 주는 입장이다. 내가 먼저 남고 그는 나간다. 내 변호사는 엄청난 열변을 토해내며 나의 입장을 대변한다. 원래 대신 흥분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차분해지는 법. 그냥 듣고만 있는다. 간혹 조정위원들이 지금 어디 거주하시냐, 아이는 어떻게 돌보고 있냐는 질문에는 솔직하게 답했다. 나에게 안타까운 동정의 눈초리를 보내며 정말 힘들겠다, 마음이 아프시겠다. 등의 위로를 해주신다. 얼음이라도 녹일 만한 표정과 따뜻한 목소리다. 나는 누구라도 감동을 받을 만한 위로를 들으며 '돈 안 드는 동정보다 재산분할을 5%라도 더 받게끔 해주세요'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발언시간이 끝나고 잠시 퇴장한 사이에 피고가 입장해서 본인의 입장을 항변한다. 합의점을 도출할 때까지 이 과정이 반복된다. 우리가 나오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피고는 영 나올 기미가 없다. “우리 보다 훨씬 오래 걸리는 거 같아요. 그렇죠?” ”대체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설득하느라 좀 오래 걸리기도 해요 “ 변호사가 나를 안심시키려 하는 말인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믿어본다.

잠시 후 그와 변호사가 나오고 우리가 다시 입장한다. 조정위원들은 우리에게 피고측의 주장은 이러하니 그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왜이렇게 오래 안나오나 했더니 정말 터무니없는 주장이네. 의외로 양육비에는 서로 별다른 이견이 없다. 양육비는 3개월 전부터 사전처분으로 60만 원씩을 매달 받고 있다. 물론 많이 받으면 많이 받을수록 좋은 거긴 하지만 평균 양육비 산정표와 그의 월급사정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욕심내지 않는다.

피고와 원고가 번갈아 입장하며 서로 팽팽하게 당기며 시작했던 줄을 조금씩 느슨하게 잡아간다.


수 시간 동안 몇 번의 반복 끝에 판사까지 7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마무리를 지으려는 건가. 내 변호사는 속삭였다. “터무니없이 조정되면 그냥 조정하지 말고 소송 계속 이어가요. 위자료라도 한 푼 더 받아야죠 “ 나보다 이 조정에 더 열심인 그녀가 고맙고 든든하다.

한 자리에서 서로 의견을 다시 절충시켜 가던 와중 그는 돌연 황당한 짓을 했다. 바로 나가서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오겠다는 것. 여기가 초등학교도 아니고 조정이혼하는데 부모님한테 물어보는 사람도 있나? 싶었지만 곧 수긍한다. 결혼생활동안 이골 나게 보아온 모습이다. 집안의 모든 일을 나 대신 아버지와 상의하고,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사사건건 이르던 그 모습. 혹시 내가 이혼을 후회할까 봐 잊었던 모습을 다시 보여준 것이라면 그의 배려심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그가 '아버지의 허락'을 구하고 올 동안 나는 '내가 지금 시아버지와 이혼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생활 내내 아이와 셋이 더 자주 외출을 한 것도, 마지막 싸움에서 합의를 시도하다가 안되자 소송을 걸라고 말씀하신 것도, 재산분할의 결정권을 가진 것도 모두 시아버지였고 나는 그에 부응하듯 이혼소장도 시아버지댁으로 보냈었다. 지금 법적으로 나와 가족인 '피고'는, 그저 시아버지의 소송대리인일 뿐이었나.

그 후로 몇 번이나 더 조정을 할 때마다 피고는 나가서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왔다. 이럴 거면 변호사를 왜 선임한 거야 대체. 오늘 피고측 변호사의 목소리는 한 마디도 들어보지 못했다. 기대반 불안 반으로 입장한 조정실이 이제 답답하다. 얼른 벗어나고 싶다.




몇 시간째 예정보다 훨씬 길어진 조정에 다들 피곤한지 얼른 조정이 되길 바라는 눈치다. 특히 뒤늦게 입장한 판사는 나만 ok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듯 조정을 종용한다.

"아삼님,조정을 거부하시는 게 위자료 때문이에요?"

"어차피 이 판결은 제가 맡았잖아요. 그렇죠? 제 생각에는 3차 기일로 끌고 가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아요."

"제가 판결을 내리는 것보다 서로 조정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재수 없다.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는(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거다) 그녀는 참 재수가 없다. 판결에는 판사운이 90% 이상이라더니 나는 뽑기를 잘못했나 보다. 평소에 운이 참 좋은 내가 이런 중요한 순간에 네잎클로버를 잃어버리다니. 어차피 시간을 끌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반 협박에 가까운 그녀의 목소리에 아니 대체 맞벌이하면서 육아휴직했는데 왜 내 기여도가 이것뿐인지, 성격차이긴 하지만 폭언이라는 유책은 상대방에게 있는 게 아닌지, 나는 양육자의 입장인데 왜 먼저 고려해주지 않는 건지 서러움이 폭발하여 따지고 싶었지만 감정적으로 한 행동이 좋은 결과를 불러온 일이 단 한 번도 없는 내 삶의 데이터가 브레이크를 걸어주었고 대신 이성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3차 기일까지 가려면 또 최소 3달의 시간이 소요될 거고 그때 가서 지금보다 일정금액 이상 받지 못하면 괜히 시간만 낭비한 셈이 돼. 아니, 저 판사는 내가 지금 조정하지 않으면 악의적으로 재산분할을 더 줄여서 판결해 줄 것 같은걸?

내 변호사는 조정할 필요가 없다며 계속 나에게 용기를 건네주려고 노력했지만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에 나는 점점 조정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온 피고가 쐐기를 박았다. "이 금액으로 조정하면 이번달 말까지 입금해 주겠다고 하시네요"


마치 몇 달 동안 골머리를 썩던 미수금을 받는 부도직전의 회사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그 말을 듣고 그의 제안을 덥석 수락해 버렸다. 애써 돈보다 시간이 중요하다는 합리화로 나를 납득시키려 노력하며. 뭣보다 입장문을 주고받는 사소한 행동도 나에겐 스트레스고 하루빨리 그와 남이 되고 싶다. 별거한 지가 10개월인데 아직 법적으로 아무 혜택도 받지 못하잖아.



결혼할 때 현금으로 그에게 보낸 돈만도 못한 액수를 받겠다는 합의문에 나는 사인을 했다. 결혼 후 우리의 총자산은 늘어났는데 나는 죽 쒀서 개 준다는 말처럼 그에게 돈을 갖다 바친 셈이 됐다. 별거 한 달 전 적금 만기가 되어 그에게 보내준 돈도 다시 돌려받지 못했다. 위자료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시간은 흘러가버려서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말 그대로 내 소송이혼은 대패했다.


그날의 조정조서.


서로 사인을 하고 지장을 찍는다. 이 종이가 변호사 선임비와 9개월의 시간의 결과물이란 말이지.

억울한 내 심정이 느껴졌는지 옆에서 판사가 조용히 위로를 건넨다. "마음속에 억울함은.. 그냥 떨쳐버리세요" 당신도 내가 억울할 건 아니? 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조용히 웃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피고?" 여기까지 와서 서로 무슨 할 말이 더 있겠냐만 최후의 발언을 하라는 기회가 주어진다. 2초 정도의 머뭇거림이 지난 후에 그에게서 "아니오.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흘러나온다.


왜 나는 그때 그의 그 말을 듣고 눈물이 고였을까? 갑작스럽게 차오른 나의 눈물에 판사와 내 변호사도 당황한 듯한 기색이다. 나는 조용히 눈물을 삼키며 생각했다. 그가 나에게 할 말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그는 항상 내가 손사래를 칠 정도로, 질릴 정도로 나에게 할 말이 있고 또 있었다. 대부분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판결문보다, 거기에 찍은 붉은 지장보다, 나에게 할 말이 없다는 그의 말이 진짜 '끝'을 선포해 주는 판사봉이나 다름없었다. 후련해서 나오는 눈물일까. 후회일까, 미련일까. 사랑은 아닌데.


조정이 끝나고 나의 짧고도 길었던 이혼소송도 함께 끝났다. 내 변호사는 못내 아쉬운 기색이었지만 나는 이미 끝난 일 곱씹어봐야 소용없다며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분명히 기쁜 일인데. 오늘은 나의 이혼기념일인데. 어쩐지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재판결과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빠서라고 나를 다독이며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가로수 나무에서 생명을 다한 벚꽃잎들이 떨어져 거리에 누워 밟혔다.

나는 벚꽃을 가장 좋아했다. 벚꽃이 만개한 3월 29일, 캄캄한 밤을 배경으로 만개한 벚꽃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그 아래에서 우리는 서로의 눈에 비친 벚꽃을 바라보며 사랑을 시작했다. 내 인생 전체에서 보자면 벚꽃이 피고 지는 짧은 시간만큼 찰나였던 우리의 관계도 벚꽃이 지는 4월 12일 끝이 났다.




벚꽃이 져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