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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삼 Jun 28. 2024

육아와 자기 효능감

엄마의 짜증이 향하는 방향

최근 육아가 너무 힘들어졌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아니면 미운 네 살을 넘은 미친 다섯 살이라 그런가, 내가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서 체력이 부족한가. 여러 이유를 생각해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누워있고 싶고, 손가락하나 까딱할 힘도 없지만 아이는 나를 부르고 있다는 현실은.


벗어나고 싶은 며칠이 지나고 돌파구로 내가 찾은 방법은 역시나 책이었다. 언제나 내가 도망치고 싶을 때, 답을 알고 싶을 때 도움을 주는 책. 


육아서를 산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산 적은 처음이다. 마치 이 책이 나의 고달픔을 달래줄 비법서라도 되는 듯 서둘러 구매해 집으로 와서 읽기 시작했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책의 한 부분이다. 


아이를 잘 통제하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하는 부모는 대체로 무기력한 기분을 느낍니다. 무언가 우울하고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든다면 내 가슴속에 크고 작은 실패들이 쌓여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이럴 때 무기력의 구렁텅이를 탈출하는 방법은 한 번이라도 좋으니 성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최민준의 아들 코칭백과 中



'아, 내가 이상태였구나'

단순히 피곤하다고 생각했던 게 무기력증이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하니 자아통제감을 잃고 점점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아이는 더 말을 안 듣고 아이를 컨트롤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무기력을 느끼고.. 그리고 분명 그 시작은 나였을 것이다. 어떤 피곤했던 날, 내가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 한마디가 이 악순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것이다. 대체로 짜증은 육아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그렇듯이 화살이 나를 향해 있는 감정이다. 아이의 짜증을 풀어줄 수 없는 나 자신에게, 아이하나 다루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나는 짜증. 그리고 다른 모든 일처럼 육아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 무력감을 느끼고 패배마인드가 자리 잡게 된다. 그 초입에 발을 디딘 나는 그걸 깨부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와 나는 누가 짜증대마왕인지 내기라도 하는 듯 서로 지지 않고 짜증을 부려대던 참이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 한 번의 성공이다. 


'그래, 이대로 한 번 해보자!'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신기한 건, 아마 모든 부모들이 공감할 텐데, input을 넣은 대로 output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5살인 지금은 그렇다. 


"아쥬야, 치카하자" 

"시더요" (소와 같은 단계)

"치카하기 싫지?(정에 대한 공감) 그래도 세균을 없애려면 해야 해.(이유 설명) 1분 있다가 화장실로 와(간제한). 안 그러면 엄마가 도와줄 거야( 예고)"


-아이는 누워서 뒹굴뒹굴 중-

-엄마에게 장난치는 말을 거는 중-


"아쥬야, 이제 30초 있다가 와서 치카해야 해(음의 준비를 하게끔 2차 예고)"

-아직 뒹굴 중-


"시간 다됐으니 어서 화장실로 와" 

- 뒹굴 중- 

"엄마가 도와줄게(감정을 담지 않고 예고한 대로 이행)"하고 화장실밖으로 한 발을 떼는 순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 다가왔다. wow!


양치를 하고 마무리는 항상 혼자 하게끔 한 다음 나는 미리 방으로 가서 입을 옷을 꺼내 세팅해 놓는 게 일반적인 루틴이다. 하지만 이 5살짜리 꼬맹이는 화장실문에서부터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거실까지 2m 남짓도 안되는데 그 거리를 걸어오는데만 한나절이다. 화장실문에서부터 꼼지락꼼지락 애벌레 흉내를 내질 않나, 가만히 멈춰 서서 일장연설을 하지를 않나. 빨리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은 그럴 때마다 열불이 나서 "얼른 오라고!"라며 결국 사자후를 토해내고 말지만 오늘은 다르다. 역시나 문틀에서 꼼지락 거리며 연설을 시작하려고 하는 아이에게 말한다. "아쥬야, 너 엄마 있는 데까지 몇 초 만에 올 수 있어?! 하나.. 둘.." 

3초 만에 후다닥 뛰어와서 내 앞에 서는 아이를 보니 감동이 벅차오른다. 아, 물론 아이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책에 대한 감동이다. 아들은 허세를 자극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하셨는데 해보니 정말 그렇다. 놀라울 정도로 정답이다. 


책에는 내가 해야 할 행동이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이는 정답지에 적힌 대로 행동했다. 이게 효과가 있겠어?라는 생각을 했다면 결코 이뤄내지 못했을 성과였다. 물론 나이가 어릴수록 효과가 좋을 것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늦은 때는 없다고 생각한다. 늦은 만큼 부모님의 인내심만 더 있다면! 


아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은 내 컨디션에 많은 영향을 줬다. 단 한 번의 지침서를 따른 행동으로 나의 무기력은(완전히 없어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물론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돌아올 테지만, 그래도 또 이겨낼 수 있겠지라는 자신감은 덤이다. 




내가 남자다운 성격이긴 하지만 그래도 성별은 여자다보니 알 수 없었던 남자아이들의 세계를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고 이론이 현실에 적용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역시 아들은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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