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도서관

by Ben

동작구에는 꽤 많은 도서관이 있다.

서울시교육청 산하에 '동작도서관'은 시설이 정말 좋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도서관 로비에 카페 같은 휴식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따로 열람실을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쾌적해 보였다. 실내 인테리어는 깔끔했지만 자료실의 책은 많이 낡아있었다. 인기 있는 책들은 경쟁이 치열해서 찾아볼 수 없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책들은 옛날에 발행된 옛날 책들뿐이었다. 도서관의 오랜 역사를 보여 주는 증거이긴 하지만, 이런 것을 신경 써서 관리하는 - 요즘 발행된 옛날 책으로 교체하려는 - 다른 도서관을 접해본 터라 아쉬움이 남았다.

동작구 통합도서관들 중에서는 노량진2동 주민센터 안에 작은도서관이 기억에 남는다. 보유 권수는 아주 적은데 신작이 많이 보였다. 책도 대부분 깨끗한 최신 발행본이었다. 근데 이용객이 없는 만큼 신경도 안 쓰는지 반납함에 반납한 책이 3주가 넘도록 처리되지 않았다. 정성껏 새 책을 채워 넣는 누군가와 대비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던 곳이다.

동작영어마루도서관은 언덕 꼭대기에 있다. 작은 놀이터가 딸려있고, 뒤편으로 등산로와 이어진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뜻하고 아이들에게 친화적이다. 실제로 편하게 도서관을 즐기는 아이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회원가입을 위해 별생각 없이 들른 곳이라 2층에 어른용 원서가 따로 있다고 들었을 때 좀 기대를 했던 것이 사실이다. 막상 올라가 보니 규모는 매우 작았고, 대부분 예전에 유행했던 시리즈물로 채워져 있었다.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구성이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스마트 도서관을 처음 계획한 사람에게 나는 이상적인 이용자 일 것이다. 늦은 퇴근길, 자판기에서 달달한 율무차를 한 잔 뽑듯 알차게 채워진 신작들을 골라 뽑는다.
이제는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최은영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한 곳도 이곳이었다. 그녀의 책은 제목과 표지에 로맨스소설 같은 느낌이 강한데, 나는 로맨스 알레르기가 있다. 주변의 극찬에도 애써 외면하던 어느 날, 목록의 대부분은 대출 상태였고 그 책만이 남아 나에게 선택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운명처럼 마주한 그 책에서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문학만 편독하면서도 자신 있게 좋아하는 작가를 꼽을 수 없었던 나는 이제 "최은영 작가님을 제일 좋아해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취향이란 걸 갖게 해준 이 장승배기역 스마트도서관은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도서관 도장 깨기라는 소소한 꿈을 갖고 산다. 이런 나에게 좋은 도서관의 기준은, 세련된 인테리어나 편의 시설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오래 기다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도서관이 존재해야 하는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율무차가 생각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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